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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크리스마스

깨진 유리, 진심이 형태를 갖춘 첫 순간과 마주하는 일

by 윌마

살면서 유리창을 깬 적이 있던가. 기억에는 없지만 한 두 번쯤 깨지 않았을까. 실수였고, 혼이 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정하고 돌을 집어 유리를 깬 적이 있던가.


유리는 조금만 닿아도 깨질 것 같은 누구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부서지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이었다. 여러 번 돌을 집었지만 차마 던질 수 없었다. 흐르는 강물에 닿고서야, 두드려봐야 아무런 울림도 없는 바다에 닿고서야 돌을 던졌다.



<8월의 크리스마스>

오늘도 사진관에 불은 꺼져 있다. 다림(심은하 분)은 편지를 써서 문틈에 꽂아둔다. 숱한 날이 지났고, 닫힌 사진관에 편지는 그대로 남아 있다. 아무도 없는 사진관에서 발을 돌리는 것도 잠시, 다림은 돌을 집어 냅다 정면 유리에 던진다.


깨든, 깨지든 유리가 깨지고서야 나는 온전해진다. 우리 사이에 놓인 유리를 깨고, 끝내 부질없는 '나'를 깨뜨리고서야 빛은 들어온다. 돌을 던져 유리가 와장창 부서지는 것, 그렇게 깨진 유리를 바라보는 것, 그것은 진심이 형태를 갖춘 첫 순간과 마주하는 일이다.


군산에 디딤돌인문학 강의를 다녀왔다. 그림을 읽고, 작가와 그 시대를 읽고, 나를 읽는 화삼독을 같이 실천했다. 내 역할은 마중물로 돌을 준비하는 것까지다. 돌을 집어던져 유리를 깨는 것은 참여자의 몫이다. 몇 분 눈빛이 남달랐다. 꼭 깨진 유리창을 바라보는 다림의 눈빛이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오는 초원사진관은 군산시내에 있다. 영화 촬영지 대부분이 군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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