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윌마 Oct 27. 2020

네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미래의 언어로 현재를 사는 삶

나는 세 아이의 아빠다. 아이 셋 모두 아들이다. 그나마 내게는 애국자라며 말을 건네지만 아내에게는 위로의 말조차 주저한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자녀 계획에 대한 내 생각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하나는 외롭고 둘은 대립한다. 하나와 둘의 상호작용과 갈등이 조화롭게 자리를 잡은 형국이 셋이다. 아내의 사전에 아이는 하나였다. 하지만 나의 지론과 꾐으로 아내는 아이 셋을 낳았다. 이후로 아내에게 휴일은 사라졌다.

아내에게 다시 신혼으로 돌아간다면 아이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아내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하나도 많다. 질문을 바꿔 보았다. 아이들과 함께한 기억을 가지고 신혼으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아내는 흠칫 당황해했다. 한 번도 떠올리지 못한 질문인 것이다. 아내는 세 아이들이 얽히고설켜 있는 지금의 모습과 거 기억들, 그리고 아이들의 미래의 모습을 동시에 떠올린 것이다. 아내의 얼굴에서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미래는 자유의지에 따라 바뀌는 것일까? 바꿀 수 있다면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 된다. 우리는 현재 시점의 선택에 따라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주제에 익숙하다. 나는 아니더라도 미래가 바뀌는 영화 주인공을 통해 간접적 경험을 한다. 미래는 그리스 비극처럼 태어난 순간부터 결정되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결국 그 운명에 따라 행동하는 것 말이다. 엄마의 삶을 부정했지만 엄마와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나. 아버지와 닮은 상대에게 마음을 주고 있는 나.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결정적 운명이다. 우리는 이렇게 결정적 삶에 익숙하다. 그동안 미래는 바꿀 수 ‘있다’와 ‘없다’의 문제로 여겼다. 자유의지에 따라 변하는 무작위적인 미래일 수도 있고, 그리스 비극 같은 결정적 운명이라는 미래일 수도 있다. 모두 시간의 흐름을 통해 결과를 알게 되는 순차적 의식 양식을 따른다.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테드 창은 사건의 시작과 끝을 한꺼번에 경험한다는 설정을 통해 초월적 의식 양식을 제시한다. 미래를 아는 경험이라는 극단적 시각을 통해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외계인 햅터포드는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경험하고, 그 근원에 깔린 하나의 목적을 지각한다. 처음과 마지막을 이미 알면서도 목적지를 향해 묵묵히 수행의 길을 걷는다. 이들에게 자유롭지 않다거나 속박당했다는 멍에를 씌울 수는 없다. 물론 자유의지가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들은 미래를 창출해내고, 연대기를 실현해 보이기 위해 행동한다. 마치 돌이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산 정상으로 돌을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를 보는 것 같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어둠의 복도를 건너는 것은 인간과 다르지 않다.

인간은 사건들을 순서대로 경험하고, 원인과 결과로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지각한다. 여기에 미래를 아는 경험이 인간에게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까? 의식은 현재를 살아가지만 과거와 미래라는 기억을 동시에 경험하는 것 말이다. 미래를 아는 사람은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듯 세월 전체를 동시에 지각하는 사람은 세월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미래의 언어로 현재를 사는 선구자의 삶이다. 모든 백성이 한글로 읽고 쓰는 세상을 미리 살아낸 세종처럼 시공간의 제한을 뛰어넘어 삶의 목적을 생각하게 한다.

인간은 자유 의지보다 관계를 통해 구축된 상호 주관적 실재에 근거해서 행동한다. 자신의 아픔보다 주위의 아픔에 더 민감한 것이 인간이다. 인간이 선택을 통해 미래를 바꾼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쌓은 관계를, 그리고 쌓아 올릴 추억을 무참히 지워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선택이 될 수 없다. 이 책의 저자 테드 창은 인간은 미래를 알더라도 인간관계에 대한 절박함과 의무감 때문에 미래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주인공 루이스는 외계인과 접촉하면서 미래를 경험하는 능력을 얻는다. 그리고 딸을 먼저 보내는 미래의 아픔을 알면서도 딸을 갖기 위해 사랑을 나눈다. 앞쪽에 존재하는 딸에 대한 기억 역시 루이스가 지각하는 경험인 것이다. 그것이 환희 일지 고통일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라는 시제를 살아간다. <네 인생의 이야기>는 세월을 동시에 경험한다는 가정하에 시공간의 제한을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 준다. 그것은 인간관계 자체가 목적인 차원이 아닐까. 그 관계에서 발현되는 수많은 감정이 존재하는 차원이 아닐까. 책이 던지는 다양한 논쟁이 변수라면 일상을 함께 하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어느 차원에서도 상수다. 우리 모두 손을 마주 잡고 사랑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