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꿈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

by 윌마

신몽유도원도, 석철주


무슨 의미일까요?

조금 있으면 글로벌 업체 간의 피 튀기는 전투가 펼쳐질 장소에 몽유도원도라니요. 나는 어느새 꿈과 삶, 이상과 현실 사이에 서 있습니다. 중요하고 급한 일에 달리고, 중요하지 않지만 급한 일로 심신이 지치면, 중요하지 않고 급하지 않은 일로 하루를 죽입니다. 그렇게 놓쳐버린 하루가 쌓이면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지요. 무심히 보낸 하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반복되고 재생산되는 일상은 하루에게 느꼈던 미안함마저 권태롭게 만들어 버립니다. 신기하게 그렇게 답이 없는 순간에 우리는 소중했지만 급하지 않았던 자신의 꿈을 떠올립니다. 꿈에서나 일어날 것 같은 일이지요. 그래서 꿈을 꾸는 일입니다. 꿈을 말하는 그림 앞에서 나는 더불어 꿈을 꿉니다.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물론 지금도 달리고 있지요. 나는 달리기라는 운동이 낯설지 않습니다. 사실 단거리는 평범합니다. 하지만 장거리는 단거리에 비해 상황이 낫습니다. 그런 덕분에 이제껏 달리기를 잘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달리기를 잘하는 이유도 예전부터 알았습니다. 몸이 가볍다는 선천적인 이유도 있지만 후천적인 노력이 더 크게 작용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새벽녘이면 동네 아이들과 함께 학교 운동장에 모였습니다. 근처에 사시는 선생님을 따라서 단축 마라톤을 했습니다. 운동장을 먼저 돌고, 언덕 너머 다른 마을까지 다녀오는 코스입니다. 어림잡아 3킬로미터 거리입니다. 아이들은 일등을 하고 싶은 마음에 빠지는 날 없이 열심히 달렸습니다. 아마 처음에는 걷고 달리고 걷고 달리고를 반복했을 겁니다. 처음 시작했을 무렵의 기억은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쉼 없이 달렸던 기억은 보다 선명합니다. 학교와 마을 주위에는 언덕과 나무들이 많았습니다. 출발해서 조금 지나면 100미터 정도 되는 오르막길을 만납니다. 지금이야 그 오르막길에서 달릴 생각은 꿈도 꾸지 않을 겁니다. 그런 길을 매일 달렸습니다. 달리는 것이 꿈인 양 달렸습니다.

한 번은 안개가 자욱한 날이었어요. 언덕을 오르고 다시 달렸습니다. 잠깐 쉬는 사이에 저 아래로 다른 마을이 보였습니다. 가구 수가 많지 않은 마을입니다. 그런데 안개 때문에 마을은 보이지 않고 왼쪽에 집 한 채가 살짝 얼굴을 내민채 자리했습니다. 내가 본 몽유도원도라고 할까요. 어린 마음에도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광은 한참을 바라보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날 몇 등을 했는지 기억에 나지 않지만 그 장면만큼은 어떤 산수화보다 더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언젠가 한 번만 더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언덕과 그 마을은 개발되어 지금은 다른 모습입니다. 그래서 더욱 그립습니다. 안평대군은 자신의 간절함을 안견을 통해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일면 부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 간절함은 표현되지 않아 오히려 그리움이 되었고, 그리움은 다시 선명한 그림이 되어 마음에 남았습니다. 책이나 미디어에서 몽유도원도를 볼 때면 생각나는 나만의 몽유도원도입니다.

오늘 삶의 전장에서 마주한 작품은 석철주의 신몽유도원도입니다. 곧 있을 전투에도 불구하고 짧지만 긴 시간을 그림 앞에서 머물렀습니다. 커다란 캔버스에 파노라마 같이 그려진 그림이 벽면을 가득 채웠습니다. 하지만 큰 그림은 우리를 압도하지 않습니다. 어젯밤 꿈에 본 것 같은, 분명 전부터 알고 지낸 것 같은 친밀감이 묻어납니다. 그림에서 살짝 풍겨지는 푸른빛은 꿈의 세계를 부각합니다. 그 빛에 이끌려 다시 어릴 적 언덕에서 보았던 나만의 몽유도원도에 빠져듭니다. 사람은 모두 자신만의 몽유도원도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비단 꿈같은 풍광만은 아닐 겁니다. 마음을 주었던 사람. 열정을 불살랐던 일. 떨림 가득했던 사랑. 석철주의 신몽유도원도를 본 이후로 나의 몽유도원도가 더욱 선명해집니다. 나의 몽유도원도가 선명해진 만큼 내 삶에 대한 애정도 의미를 더해갑니다. 오래전에 잃어버린 꿈과 열정을 되찾은 기분입니다. 꿈을 말하는 그림의 가치를 알게 되는 대목입니다.

달리는 것 만이 내 꿈은 아니었습니다. 달리기는 꿈을 찾아가는 동력으로서 의미가 더 크지요. 내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 꿈을 다시 떠올리자 내 삶은 이내 활기를 찾습니다. 그렇게 나는 꿈과 삶이라는 공간 사이에 서 있습니다. 오늘 전투에 참여할 모든 사람들에게 꿈을 말하고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입니다. 꿈과 삶의 소통을 담은 그림 앞에서 오늘 만나는 우리는 내일을 노래할 겁니다. 이 만남의 장은 피 튀기는 전장이 아니라 서로의 꿈을 응원해주는 무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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