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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마 Nov 19. 2020

대화, 피천득 김재순 법정 최인호

신은 결코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기도드리겠다는 표현을 쓴다. 예전엔 특정 종교를 따르는 것 같아 망설였지만 쾌유를 비는 것처럼 기적이 필요할 때면 자연스럽게 두 손을 모은다.
짧게 한다.
많이 너그러워졌다. 내가 지난 자리엔 칼바람이 인다던 게 엊그제 같은데. 나이가 든다는 것은 젊은 날의 방황과 욕망, 분노, 초조감 같은 것들이 지그시 가라앉고 안정된다는 뜻이란다. 그런데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아직 세상엔 용서할 수 없는 일들이 넘쳐난다.

이럴 때면 나이 지긋한 선배들의 말씀을 뒤로하고 아이들을 바라본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아이들 얼굴을 거울삼아 자신을 성찰할 기회를 갖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이의 눈높이에 따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이의 크기만큼 순수와 천진에서 멀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혜월스님도 동자승에게서 천진을 다시 배웠다지 않던가.

들판에서 백 마리 양이 풀을 뜯다. 내 손발로 구할 수 있는 양은 아흔아홉 마리다. 마지막 한 마리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 두 마리일 수도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백 마리 모두 구하겠다고 덤볐다가 내 자신부터 구해야 했던 적이 적지 않았다. 백 마리 전부를 구할 수는 없다. 삶은 내 그릇의 크기를 확인하고 그 한계를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아 내가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 길 위에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기적은 절대 우연히 일어나지 않았다.
신은 결코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고 인정하는 순간 신이 찾아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게 된다. 백 마리 양을 추구했던 것은 그 무엇이 되고 싶었고 그 무엇을 닮으려 했던 나의 욕심에서 비롯되었다. 그 욕심마저 자기의 이유가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었던가. 자기 빛깔의 자기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운명의 장난을 입에 담는 자는 서럽다.

진짜 자신을 찾는 시작은 겸손이다. 풍성하게 차려진 식탁 한 구석을 차지하기 위해 겸손하지 못했던 스스로를 인식하고 자신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시간이다.

기적의 몫은 그다음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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