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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마 Nov 21. 2020

연애 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플베다

오늘은 분노합니다 내일은 분노를 잊게 해주는 연애소설을 읽습니다

(코로나 19로 삶을 마감한 루이스 세플베다를 추모합니다.)


어렸을 적 뛰어놀았던 앞동산 뒷동산의 소나무는 모두 베어지고 넓은 밭이 되었습니다. 개발 지상주의라는 말은 분명 불편합니다. 도시에서 산 세월이 많아진 우리는 어느 정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햄버거에 들어가는 값싼 고기를 얻기 위해 아마존 열대 우림을 파괴한다는 소식을 듣고 패스트푸드를 멀리합니다. 그것도 잠시이지요. 책의 저자 루이스 세풀베다는 주인공을 통해 아마존의 처녀성을 유린하는 모든 이들에게 저주를 퍼붓습니다. 그 저주 안에 내가 포함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나야 그렇다지만 맛있게 버거를 먹는 아이들에게 미안해집니다.

아마존은 밀림입니다. 우기가 되면 많은 동물들이 죽음을 맞습니다. 더욱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우기를 맞는 것이라면 노아의 방주 같은 기적을 기다린 것 외에 방도가 없습니다. 주인공에게 아마존은 저주스러운 땅이고 아내마저 빼앗긴 증오의 땅입니다. 가톨릭을 믿고 땅을 일구던 주인공이 아마존을 찾은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밀려나고 흘러 들어간 막장일 뿐입니다. 하지만 밀림은 그의 언어를 모릅니다.

다행히 수아르  인디오들과 함께 하며 밀림의 언어를 이해한 주인공은 밀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사랑과 꿈을 빼앗긴 증오는 밀림 때문이 아닌 자신의 무지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밀림은 어쩔 수 없이 밀려서 간신히 숨만 쉬는 공간이 아니고 자신에게 자유를 알게 해 주는 공간으로 바뀝니다. 자기의 이유를 발견한 것이죠.

자기의 이유는 밀림에 사는 암 살쾡이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 의해 새끼들과 숫 살쾡이가 죽자 암 살쾡이는 스스로 죽음을 찾아 나섭니다. 인간의 거처까지 접근하는 무모함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인간과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싸움을 벌인 뒤에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을 맞고자 합니다. 자기의 이유가 있는 자유로운 죽음입니다. 이는 주인공이 피하고 싶었던 동물과의 대결을 선뜻 받아 드린 이유가 됩니다. 암 살쾡이를 가족에게 보내 주면서 주인공은 세상에 분노합니다. 그리고 오두막으로 돌아와서는 분노를 잊게 해 주는,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를 알게 해주는 연애 소설을 읽습니다.

수아르 족과 주인공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 인상적입니다. 수아르 족은 부족원을 죽게 한 동물이나 사람에 대해서는 복수를 원칙으로 합니다. 상대를 죽일 때에도 상대에게 용감하게 싸울 기회를 준 다음에 독화살로 끝장을 내서 상대의 얼굴에 용기가 남아야 죽은 부족원이 평온하게 눈을 감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주인공은 가장 친했던 누시뇨의 죽음에 복수를 감행합니다. 하지만 독화살이 상대에게 빗맞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본능처럼 빼앗은 엽총의 방아쇠를 당깁니다. 수아르 족은 상대가 총을 맞았기에 그의 얼굴이 놀라움과 고통에 일그러져 저 세상으로 떠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은 수아르 족의 명예를 더럽혔을 뿐만 아니라, 친구 누시뇨에게 영원한 불행을 가져다준 것입니다. 이 일로 수아르 족은 주인공과 헤어집니다.

수아르 족은 부족의 명예가 걸린 복수의 기회까지 주인공에게 허락하였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지배자의 논리를 펴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은 모든 면에서 수아르족이었으나 동시에 수아르 족이 아니라는 말은 다양성을 포용하되 지배하지 않는 '화이부동'을 이야기합니다.


자식을 팔겠다는 어미

그렇게 토대가 무너진 약자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

감당할 수 없는 폭력을 감당해 내야 하는 현실


하루가 멀다 하고 을 다지 못할 들이 쏟아지는 세상입니다. 오늘의 당혹감이 어제의 당혹감을 밀쳐내면, 내일 올 당혹감은 태롭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당혹스러운 일에 오늘 분노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일은 분노를 잊게 해 주는, 자기의 이유를 생각하게 해 주는,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를 알게 해주는 세풀베다의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을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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