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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마 Nov 17. 2020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세상의 절반을 사슬에 묶어 둔다면 다음은 없다.

미국 타임지는 '2020년 꼭 읽어야 할 책 100권'에 <82년생 김지영>을 선정했다.

주인공 김지영은 1982년생이다. 하지만 제목에서 김지영은 82년생이다. 김지영의 삶은 면면히 흘러내려온 보통 여성의 삶이다. 영원한 세컨드이고, 사회적 약자이며, 제도의 피해자이다. 1782, 1882, 어느 백 년을 갖다 붙여도 옷만 달라졌을 뿐 여성이 느끼는 내면의 상처는 그대로다. 오히려 배우고 경험했기에 상처는 깊이를 더한다.

김지영은 여자다. 천상 여자다. 후배가 사다 준 립글로스를 바르고 기분이 좋아지는 여자다. 타고난 성 정체성을 탓할 마음은 없다. 남자와 여자를 비교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잘 다. 하지만 공정하지 않는 세상에서 열정과 신뢰는 사라진다. 손해 보는 건 늘 여성이다. 이상한 세상은 여성들을 비교하게 만든다.

김지영은 내 인생, 내 꿈, 내 일, 내 생활, 어쩌면 나 자신까지 전부 포기하며 살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자신을 벌레처럼 쳐다본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으니 이젠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그는 출구가 없는 미로 속에 서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김지영은 한 번씩 다른 사람이 된다. 모두 김지영이 알고 지낸 여자다. 시집살이하는 딸을 걱정하는 친정엄마고 자신을 살갑게 챙겨준 선배 언니다. 거울을 보며 큰 소리로 하고 싶었던 말을 다른 사람이 되어 쏟아낸다. 그는 자신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희망을 버린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되어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것은 제발 사람으로 대접받고 싶다는 의지의 다른 면이다.

내 아내는 전업 주부다. 큰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을 그만둔 이후로 육아와 자녀 교육에 매진중이다. 아내는 집안의 모든 일을 종합적으로 바라보는 위치에 있다. 네 명이나 되는 남자들의 성격은 물론 무얼 좋아하는지 무얼 싫어하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 물건 하나하나가 갖는 의미와 놓여 있어야 할 위치를 꽤 차고 있다. 반면에 우리 집 남자들은 그냥 자기 앞만 본다. 아주 편협적으로 자기 일만 자기 물건만 생각한다. 그러니 집사람에게 논리적으로든 감성적으로든 매번 질 수밖에 없다. 집에서 아내의 지위는 확고하다. 더 이상 올라갈 곳도 없다. 그런데 아내는 늘 고달프게 산다.

아내가 바라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지만 남자들은 사소한 것서 실패한다. 아내는 자기의 삶을 통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엄마의 삶을, 이 시대의 여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필연적 관계에 있는 남편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일이다. 여성이 아무리 많이 배우고, 책을 많이 읽고, 사회에서 높은 자리에 올랐더라도 필연적 동반자인 남성이 마음을 고쳐 먹지 않는 한 자신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펑펑 울어가면서 터득했다. 그러니 끊임없이 남편을 구박하고 구애를 보내는 것이다. 아내의 한마디 한마디는 내가 보지 못하는 시선을 담고 있다. 지금 구박을 받는다면 그건 아직 사랑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포기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변화가 없다면 아내는 다른 사람이 되어 속마음을 털어놓을지도 모른다.

김지영을 보며 신랑 정대현처럼 막막하고 착잡하고 두려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어느 한 구석 너무 과하게 그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다. 남자를 두려워하는 여자들에게 세상엔 좋은 남자가 더 많다고 말한다. 세상을 무서워하는 여자들에게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지극히 가진 자의 논리다. 선택의 기로에서 매번 전부를 걸어야 하는 여성의 입장을 남성은 모른다. 다른 사람이 되어서라도 버티고 살아보려는 김지영이다. 여자들을 설득하려 하지 말고 이 책을 한번 더 읽어야 한다. 세상의 절반을 사슬에 묶어 둔다면 다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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