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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마 Dec 23. 2020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유발 하라리

더 나은 삶은 '무엇'이 아닌 '어떻게'를 고민할 때 가능하다


사람들은 어딘가에 어떤 영원한 본질이 있으며, 그것을 찾아서 연결만 하면 완전한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 영원한 본질은 때로는 신, 국가, 영혼, 진정한 자아, 진실한 사랑으로 변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와 여러 가지 정체성의 포트폴리오를 유지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어느 하나에서 다른 것으로 바꿔가며 사용한다. 그 안에 담긴 인지 부조화는 개선되지 않고 형체만 바뀌어 계속 이어진다.


사람들이 Facebook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완벽한 자아를 구축하고 장식하는데 무수한 시간을 쏟는 가운데, 점점 자신의 창작물에 고착돼 가면서 자신의 실체를 왜곡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사실 우리의 욕망, 그리고 이런 욕망에 대한 반응까지 우리가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예를 들어 생각하지 않을 권리는 우리에게 없다.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집중해 보지만 몇 초만 지나면 정신은 흩어지고 좌표 없이 떠오르는 생각의 물꼬를 막을 수 없다. 우리에게는 진정한 자유의지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환상이라면 무엇이든 실현하려고 애쓰기보다 자기 자신과 정신 그리고 욕망의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학교, 직장, 신분처럼 역할이나 대상에 자신을 투사하지 말고 자기 자신에 대해 관심을 더 가져야 할 시점이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자신에 대해 더 무지하다. 근대에 들어 합리적 개인을 과신했지만 인간의 결정은 이성적 분석보다는 감정적 반응과 어림짐작식의 손쉬운 방법에 기초하고 있다. 사실 감정은 합리성의 반대가 아니다. 감정이 체화한 것이 진화의 합리성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자신의 무지를 헤아리기가 힘든 이유는 자신과 같은 친구들로 가득한 반향실과 자기 의견을 강화해주는 주체할 수 없는 스피드 안에만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믿음은 공고해질 뿐이고 도전받는 일은 거의 없다.

인간이 다른 포유류와 차이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인간만이 가진 인지 기술 때문이다. 학습과 분석, 의사소통, 무엇보다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인간의 직관이라고 과시해 온 능력이 실은 패턴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생존과 재생산의 확률을 재빨리 계산하기 위해 사용하는 생화학적 기제라는 것이다. 생명기술과 정보기술 혁명이 합쳐지면 빅데이터 알고리즘을 만들어 낼 것이고, 그것은 내 감정을 나보다 훨씬 더 잘 모니터링하고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정을 파악하는 데에 빙의 수준처럼 완벽할 필요는 없다. 평균적으로 인간보다 낫기만 하면 된다. 인간은 점점 더 기계라는 알고리즘을 신뢰하게 될 것이다. 디지털 독재는 사회적인 불평등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특정 계층을 사회와 관련이 없는 종으로 분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21세기 중반이 되면 변화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는 데다 수명까지 길어지면서 전통적인 모델은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 인생은 조각조각 부서지고, 서로 다른 기간들 사이의 연속성도 점점 줄어든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전에 없이 다급하고 복잡한 질문으로 떠오를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공황에 빠지지 말자. 공황은 일종의 오만이다. 세계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정확히 안다는 우쭐한 느낌 말이다. 하지만 당혹은 보다 겸허하다. 우리가 당혹스럽게 집중해야 할 것은 사람들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고 사회적 지위와 자존감을 보호하는 일이다. 역사에서 얻은 교훈에 따르면 자신이 보호해야 할 정체성은 공통된 특성을 길게 열거한 목록을 작성하기보다 공통의 갈등과 고민의 목록에서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류가 직면한 커다란 질문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이다. 먼저 고통을 관찰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이 가장 좋은 출발점이다. 그것이 내가 속한 사회와 나의 정체성을 규정했던 역사를 이해하고, 내가 진정으로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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