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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마 Sep 12. 2021

오늘부터의 세계, 안희경

미래는 우리의 선택과 행동으로만 완성된다

오늘부터의 세계, 안희경

냇물이 흐르는 천(川) 양 옆으로 아파트가 늘어선 동네에 산다. 계획도시 서쪽에 자리 잡은 동네는 십 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조용하고 깨끗하다. 이젠 나무가 우거져 자연스럽다. 산책길을 따라 동네를 걸을 때면 가끔 의구심이 생긴다. 생(生)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담겨야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가장 아쉬운 건 골목시장이 없다는 점이다. 뽀얗게 김이 오르던 순대, 매콤한 곱창, 뜨뜻한 국물과 어묵을 먹으면서 얻었던 관계의 깊이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에서는 찾을 수 없다. 관계의 지속성이 없다. 물론 아이들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아이들은 아버지 세대와 달리 네트워크를 통해 관계의 지속성을 찾는다. 코로나19 아래에서 아이들은 놀이마저 화상미팅(Zoom)이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만나고 헤어진다.


결혼할 때 아내와 몇 가지 약속을 했다. 그중의 하나가 대형마트보다 동네 슈퍼나 시장을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슈퍼 할아버지는 인사 잘하는 큰 아이를 예뻐하셨다. 돈이 부족할 때는 다음에 올 때 달라는 외상이 가능했다. 가끔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두 손 무겁게 돌아올 때는 미안한 마음에 동네 슈퍼를 피해 다른 길을 이용했다. 이사를 온 이후에는 그 미안함마저 느낄 기회가 사라졌다. 동네에는 프랜차이즈 마트와 편의점뿐이다. 골목시장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로 이제는 택배로 생필품을 조달한다. 베란다 한쪽에 쌓이는 택배 상자를 바라볼 때면 한 평 남짓한 자리에서 물건을 팔며 생계를 이어가던 골목시장 아주머니들을 생각한다.


일명 신자유주의 체제 안에서 자본과 플랫폼을 독점한 세력에게 부가 집중되고 그 바깥은 재편이라는 미명 아래 무너지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골목 깊숙이 파고든 그 변화는 마치 풍경이 바뀌는 것처럼 부지불식 중에 일어난다. 어느 순간 우리는 세력을 이룬 이들이 제시하는 삶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제도권에서 배제된 소외 계층은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스러져간다.


위기는 사회의 약한 고리를 강타하고 취약한 고리를 먼저 쓰러뜨린다. 코로나19로 곳곳이 봉쇄되었고, 경제 위기로 치닫고,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 혐오가 세분화되어 분출되었다. 하지만 지구적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한 글로벌 체계는 답보 상태다. 각국 정부는 아직도 방역대책에 정신이 없지만, 사회 곳곳에서 고통의 소리가 높은 만큼 연민과 보살핌, 성찰의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가 특정 소수 집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폭염에도 묵묵히 병상을 지키는 돌봄 노동자, 차 경적 소리에 깜작 놀라던 도로 청소 노동자, 대차에 가득 짊을 싣고 땀을 훔치던 택배 노동자처럼 평소에는 관심을 받지 못하던 소외 계층에게 있다는 것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은 다행스럽다. 코로나19라는 위기가 없었다면 ‘기본소득' 같은 사회안전망에 대한 논의가 지금처럼 빠르게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며,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성장이 어려운 시대에 ‘공평한 분배’를 통해 성장의 질을 도모해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힘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2013년에 ‘우리 문명은 이제 50년 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저널리스트 안희경과의 인터뷰에서 8년 전 50년을 30년으로 정정하면서 예상보다 빠르게 나빠지는 현실에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얼마 남지 않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지금은 전방위적인 혁신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혁신 권위자로 일찍이 기본소득을 주장했던 카를로타 페레스는 “모든 혁명은 거대한 전환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황금시대로 가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조건이 붙는다. 많은 이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될 때에만 그 잠재력이 발휘될 수 있다.”라고 역설한다. 이미 우리 앞에는 정부와 기업과 우리 사회가 서로의 상호성을 인정하고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충분한 선택지가 놓여 있다. 또한 우리는 생태계 파괴가 부른 인류 문명의 위기를 타계하기 위해 제시되는 혁신으로서의 해법이 특정 거대기업과 인프라에 집중되는 악순환을 막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아래 글귀가 이마를 꿰뚫고 지나간다.


‘미래는 우리의 선택과 행동으로만 완성된다.’

‘최후의 치료이자 최초의 예방은 정치이다.’

‘민주주의란 주인의 혹사 속에서 지켜질 수밖에 없다. 촛불을 들었던 그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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