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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마 Oct 23. 2021

나는 말이 아니다

오징어 게임


세상사에 행(幸)과 불행(不幸)을 분배하는 것은 신(神) 중의 신 제우스가 가진 권능 중의 하나였다. 행과 불행이 공평하게 나눠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최고의 신이라도 권위를 인정받기는커녕 골치만 아플 일이다. 묘책이 없을까 고민하던 제우스에게 모순(矛盾)이라는 방책은 신의 한 수였다. 세상에 온전히 행(幸)인 것은 없고, 온전히 불행(不幸)인 것도 없다. 고난이라는 불행을 풀어헤쳐보면 그 안에는 행이라는 선물이 들어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행복을 만나는 순간 그 안에는 구속하고, 구속된다는 절망이 손을 흔들고 있는 모순을 만나게 된다. 이렇게 제우스는 행과 불행을 모순이라는 그릇에 섞어 버렸다. 행과 불행을 인간에게 강요하지 않았고, 선택은 인간의 몫으로 돌렸다. 물론 선택한 이후에 따르는 책임도 인간의 몫이었다. 제우스는 자신이 뿌려 놓은 모순을 인간들이 알아채지 못하기를 바랐다. 하늘에서 술 한잔 걸치면서 인간들이 모순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었을 것이다.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인간의 내면은 불안으로 가득하다. 불안을 일으키는 상황은 다양하다. 죽음은 먼 미래의 일이라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잠재의식은 살아 있는 동안 항상 죽음을 경험한다. 불사(不死)의 몸이라면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할 이유가 없다. 자신이 결국 죽는다는 것, 즉 유한한 존재라는 각성은 존재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이유이면서 까닭을 알 수 없는 근원적 불안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그래서 목숨을 건 게임 앞에서 불안해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은 제우스에게 가장 재미있는 오락이지 않았을까? <오징어 게임>을 둘러싼 풍경도 이와 다르지 않다. 게임에 참가한 456명의 참가자들의 말은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먹을 것을 주세요”, “가져. 자네 꺼야. 깐부잖아.”처럼 단순하고 분명하다. 이에 반해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저희는 여러분에게 게임을 강요하지 않습니다.”라는 설계자들의 말은 사람의 말로 들리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없는 사람들의 생사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있는 자들의 몫이었다. 다만 그들은 강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어질 수밖에 없는 길을 걷는 것이 약자의 숙명이었다.


<오징의 게임>의 설계자 오일남과 VIP들은 타인의 불안을 즐긴다. 그들을 비추는 거울이 죽음이라면, 자신은 게임의 말이 아니라고 외치는 우승자 성기훈을 비추는 거울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당연히 탄생이다. 진정한 기적과 가능성은 새로운 탄생에서 나온다. 탄생은 ‘게임의 말’로 살았던 자기를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반복되고 재생산되는 부단한 과정에서 자기 폐쇄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 일상이다. 일상에 묻히면 그곳이 지옥이어도 하루하루 반복이 있을 뿐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녹색 체육복을 입고 운동장에  순간 자신이 그동안 말로 살았다는 걸 직감한다. 입에 물린 재갈을 벗어던질 수 없는 상황에 눈앞은 더욱 암담해진다.


게임의 말이 된 것이 온전히 자신의 탓일까? 우리가 이런 세상의 한 복판에 던져진다는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옆 사람을 죽여야만 한다면 사람은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는 세상은 우리를 억압하는 시스템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옆 사람이 죽은 책임을 자신의 몫으로 돌리는 것이고 하늘 위의 신들에게 재미를 보탤 뿐이다. 자신의 아픔보다 주위의 아픔에 더 민감한 것이 사람이다. 우리의 선택이 주위에 대한 연민과 동정에 기반한다면 자신은 더 이상 말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마지막 장면은 과거의 자신과 단절하고 사람으로 거듭나는 탄생의 서막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되어질 수밖에 없는 길을 걷는 약자의 한 걸음 한걸음에는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강한 힘이 담겨 있다는 것이 <오징어 게임>에 담겨있는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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