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윌마 Dec 04. 2022

부름에 끌리듯 그림 앞에 서서

존재 그 자체에 집중해 주기

둘째 빈이는 종기 접기를 즐겨한다. 수준이 남다르다. 재료 준비부터 접는 과정, 그리고 전시까지 꼼꼼하게 해낸다. 작품을 구상하고 그려서 전시회를 여는 화가의 모습 그 자체다. 국내 유투버 영상은 섭렵했고 해외 유투버 영상을 찾아 접는 중이다. 빈이는 마음에 드는 종이접기 영상을 찾으면 내게 보여준다. “아빠! 저 이거 접고 싶어요. 그런데 이거 정말 어려워요. 못 접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해볼래요.” 나이는 어리지만 일을 제대로 알고 하는 사람의 말과 다르지 않다. 과정이 어렵고 실패할 가능성을 아는 것은 자세가 겸손하다는 뜻이다. 실패를 알면서도 해보겠다는 것은 도전 의지의 표현이다. 빈이의 말에는 일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두 가지, 바로 겸손과 도전 의지가 담겨 있다. 빈이는 국영수에는 약하다. 국영수로는 자신이 빛나지 않는다. 빈이는 종이접기를 할 때 빛난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빈이가 영상을 찾을 때 어느 한 영상이 빈이에게 말을 걸어왔을 것이다. “나 접어볼래? 나 쉽지 않거든. 그런데 나 접으면 네가 빛날 걸. 내가 너 빛내줄게.” 빈이는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영상을 선택해서 내게 보여준 것이다. 빈이는 자신의 존재 그 자체를 비추는 영상의 부름에 이끌렸고, 종이를 접었고, 빛났다.


내게는 그림이었다. 그림이 내게 말을 건네 왔다. 그래서 나는 그림을 본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림의 부름에 끌려 그림 앞에 선다고 말한다. 그림을 보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유명 화가나 미술평론가는 자신만의 회화론을 얘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방식을 관통하는 하나가 있다. 살면서 우리는 어떤 상징이나 장면에서 마음이 울리는 경험을 한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찰나의 장면에서 무언가를 알려주는 느낌을 우리는 알아챌 수 있다. 그 느낌은 충격이고, 충격파는 마음속에 인상을 남긴다. 하지만 인상은 오래가지 않는다. 바쁜 일상에 묻혀 버린다. 충격에 노출될수록 충격에 길들여진다. 그 충격에서 하나의 의미를 발견할 때까지 사유를 끌어갈 체력이 필요하다. 연습을 통해 몸에 익어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이걸 공부라고 부른다. 마음 근육을 키우는 마음공부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이 유명한 그림이 된다. 물론 이미 유명하기에 좋아하는 그림도 있다. 유명한 그림에는 대중의 마음을 울리는 보편적 메시가 담겨 있다. 사랑 행복 존재와 같은 명제다. 모나리자가 유명한 이유는 ‘이그노라무스(ignoramus), 우리는 모른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다. 물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평생 동안 연마한 회화기법과 세계관도 중요한 몫을 했다. 알 듯 모르듯 한 모나리자의 미소. 그건 사람의 마음을 닮았다. 옛말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가 없다고 하지  않던가. 밖으로 드러난 모습만으로 절대로 진짜 감정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역사상 가장 뛰어난 혁신가의 깨달음이었다. 그의 작품이 미완성의 완성으로 남은 이유다. 헤아릴 수 없다는 미완성을 완벽하게 구현했기에 우리는 여전히 모나리자의 미소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사람의 경험은 모두 다르다. 다양성은 개별성으로 이어진다. 개별적인 나에게만 울림을 주는 그림이 있다. 숨기고 묵혀둔 자신의 욕구를 대신 말해주는 그림들이다. 외면하고 지나가면 어느 지점에서 넘어진다. 사람은 넘어진 곳에서 또 넘어진다. 주저앉아 설운 마음을 곱씹을 때마다 자신의 처지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그림을 만나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내 마음을 나보다 더 잘 말해주는 노래를 만나면 바로 최애(最愛) 노래가 된다. 최고의 만남은 사람이다. 사랑 때문에 생긴 상처는 사랑으로 치유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얼마 전에 모 국회의원이 국회 본회의 내내 게임을 하다가 카메라에 잡혔다. 앞에서 떠드는 상대방 국회의원이나 정부 관계자는 그 국회의원의 마음을 단 한 번도 알아주지 못했던 것이다. 게임은 미션에 성공하면 화면 가득 환호해준다. 자신의 존재 한가운데를 비춰준다. 그래서 자신을 알아주는 게임에 열중했을 것이다. 게임에 빠질 수밖에 없다. 부족해도 넘쳐도 문제다. 중심을 잡아주는 마음공부가 필요한 이유다.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마음공부가 있다. 누구는 명상을 한다. 책을 읽는다. 산에 오른다. 길을 걷는다. 산책 수준이 아니라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국토 종주다. 어떤 식으로든 마음에 전해진 충격을 외면하지 않고 의미까지 연결 짓는 공부가 필요하다. 외면하면 다음엔 더 큰 파고로 밀려든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가장 특별했을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