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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마 Aug 02. 2023

반성의 시작은 용서입니다

용서는 들을 준비가 된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시인 윤동주는 ‘병원’이라는 시에서 지금의 세상은 온통 환자 투성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늙은 의사에게 지금의 세상은 모두 정상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완고한 늙은 의사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의사도 아니면서 아무 문제없다며 자신을 외면하는 나는 스스로에게 가장 비협조적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주위에 드러난 아픔에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공감하고 위로하고 격려해 주는 것이죠. 이 단순하고 분명한 이치를 자신에게 베푸는 사람은 드뭅니다.


일이 되어가는 형국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자신에게 아픔은 감당해야 하는 것이지 공감과 위로가 먼저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아프면 안 되는 사람이고, 아픔을 인정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헤어지자는 연인의 말을 장난으로 치부하고 매달리면서 이별을 내 안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치입니다. 헤어진다는 상황을 내 스스로 인정하는 순간 연인이 없는 세상은 현실이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사는 것도 힘들겠지만 지옥 같은 세상에서 아픔을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죠. 그렇게 자신은 스스로에게 동행이 되지 못합니다.


주위의 기대를 온전히 자신이 원하는 진실로 수용하지 못한 나는 사회가 원하는 역할에 나를 길들였습니다. 남자, 장남, 직장, 아빠... 나의 정체성을 이들 역할에 투사했습니다. 주위의 기대와 나의 진실 사이의 불균형에서 오는 불안을 모두 내 잘못인 양 모질게 굴었습니다. 아파하는 나에게 곁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따뜻하게 손을 내밀지 못했습니다.


반성의 시작은 용서입니다. 자신을 거울 앞에 세우는 일은 그다음입니다. 내게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입니다. 용서는 들을 준비가 된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더군요. 그동안 내가 했던 반성은 헛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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