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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마 May 29. 2022

내가 가장 특별했을 때,

서로가 특별해야 비로소 특별해진다

내가 가장 특별했을 때 나는 찔레꽃 향기를 알지 못했다. 찔레는 무리 지어 자랐고 뒷집과 우리 집을 구분해주었다. 오월이면 새하얀 꽃이 가지 끝에 여러 송이 모여서 피었다. 누나 따라 연한 찔레 순을 따 먹을 때면 눈에 띄였는데, 가시가 있어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뒷마당에서 향긋한 꽃향기가 났지만 나는 어떤 꽃에서 나오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내가 가장 특별했을 때 나는 물 위를 뛰었다.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나는 물 위를 걸을 수 있다고 믿었다. 처음 한 발은 조심스럽게 내디뎠지만 발이 빠지기 전에 다른 발을 딛기 위해서는 뛰어야 했다. 경쟁심에 젖어 신발이 젖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누나에게 혼날 걱정으로 발걸음이 무거웠다. 다음날 아침, 나는 깨끗하게 마른 신발을 신고 학교에 갔다.


내가 가장 특별했을 때 나는 세상의 중심이었다. 만물이 나를 중심으로 도는 만동설(萬動說)이랄까. 지동설과 천동설은 틀린 이론이었다. 나는 뉴턴보다 어린 나이에 만유인력을 발견했다. 해 달 별 모두 내가 가진 마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이들과 동네를 돌고 돌 때면 동네는 우리들의 중심이었다. 두 무리로 나뉜 아이들이 아우성치면 동네는 북극과 남극으로 자기장을 펼친 커다란 자석과 다르지 않았다. 그곳에서 시간은 실제와 다르게 흘렀다.


내가 가장 특별했을 때 내 이빨은 자주 썩었다. 나는 사탕과 충치의 상관관계를 알지 못했지만, 사탕이 어디에 있는지는 잘 알았다. 아빠가 주셨고 엄마가 주셨다. 결정적으로 내가 꺼내 주었고 거리낌 없이 먹었다. 썩은 이빨 사이로 하얗게 돋아나는 새 이빨에 놀란 엄마는 처음으로 치과에 나를 데려가셨다.


내가 가장 특별했을 때 나는 돌을 가장 멀리 던지는 아이였다. 돌만 보면 몸이 먼저 움직였다. 끊임없이 던졌고 또 던졌다. 참새에게 던졌고 나무에게 던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땐 허공을 향해 돌을 던졌다. 돌은 떨어져 땅과 강 그리고 바다에 부딪혔다. 아무아프다 말하지 않았다. 한 번은 체육시간에 멀리 던지기 운동을 했다. 하늘 멀리 날아가는 돌의 포물선을 기억하는 내 어깨는 운동장을 향하는 내내 들섞였는데 막상 내 주먹에 쥐어진 것은 5Kg 쇠공이었다. 쇠공은 멀리 날지 않았다. 어깨가 아팠다.


내가 가장 특별했을 때 나는 밤이 무섭지 않았다. 나보다 몸집이 큰 누나는 밤을 무서워했지만 나는 씩씩하게 누나의 손을 끌며 밤길을 걸었다. 내게 밤은 바람과 다르지 않았다. 내 몸을 어루만지듯 스치는 바람처럼 밤은 내 주위를 어둠으로 채울 뿐이었다. 어둠이 깊어갈수록 밤은 좋은 놀이 공간이 되었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이 무서웠다. 자다 깨었는데 주위에 아무도 없었고, 그때는 대부분 어두운 밤이었다. 나쁜 짓을 하면 소복 입은 귀신이 잡아간다며 어른들은 자주 겁을 주었다. 나는 엄마에게 거짓말을 한 내 자신이 무서웠고, 나를 잡아갈 귀신이 무서웠다. TV에 본 귀신은 흰 옷이 잘 보이는 어두운 밤에만 나왔다.


내가 가장 특별했을 때 나는 차전놀이의 대장이 되어 동채 위에 서 있었다. 나아가고 물러서고, 좌우로 크게 돌아가면 마치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상대편의 동체를 눌러 땅에 닿게 하면 이기는 것인데, 양쪽의 동체 머리 부분이 맞물려 수직으로 솟구치면 내 몸 가누기도 어려워 우리 동체의 위치가 유리한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동네 형이 외치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눌러'라고 외쳤다. 모두가 이겼다고 기뻐했지만, 나는 하늘을 날아오르는 기쁨과 땅으로 곤두박질 치는 절망 사이에서 서성거렸다.


내가 가장 특별했을 때 아버지는 악산(岳山) 같았다. 아버지는 언제나 나보다 두 세 걸음 앞서 걸었다. 멀어지면 가까이 와라, 가까이 오면 떨어지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을 아버지의 등에서 들었다. 아버지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등으로 보여주셨다. 학교에서 바둑을 배운 뒤로 아버지께 졸라 바둑을 두었다. 매번 졌지만 다음번에는 이길 것 같았다. 나는 한 번도 아버지를 이기지 못했다. 아버지는 나의 특별함과 내가 넘을 수 없는 암벽 사이 어딘가에 계셨다.


내가 가장 특별했을 때 나는 물 위를 걸어서 건널 수 있다고 믿었고, 열심히 뛰었지만 매번 물에 빠졌다. 신발을 망쳐 울먹이는 나를 누나는 혼내지 않았고,  밤새 신발을 빨고 말렸을 누나의 수고를 알지 못했다.

퇴근길에 걸었던 잠실 진주아파트 담벼락에서는 향긋한 꽃향기가 났다. 붉은색 장미꽃이 덩굴 지어 피었기에 장미꽃 향기라고 여겼는데, 장미꽃 사이로 하얀 찔레꽃이 숨어 있었다. 내가 알아주기까지 목놓아 울었을 것을 생각하니 질레꽃 향기가 슬퍼 보였다.

나는 이제 혼자 있는 것도, 귀신도 무섭지 않다.

요즘 드라마에 나오는 귀신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제는 밤은 무섭다. 밤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면서 지독하다. 답을 찾지 못해 하얗게 지새운 밤은 더욱 무섭고, 아무런 변화 없이 다시 맞는 밤은 더없이 잔인하다.

나는 무서운 아버지가 되지 않으려고 아이들에게 자주 사랑을 표현한다. 눈을 맞추고 안아주고 사랑한다 말한다. 사랑을 드러낼 때면 아버지와 등으로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보여주진 않았지만 등으로 드러내신 아버지의 그 무엇이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떼 쓰다 지쳐 못내 시들해 아이처럼 나는 더 이상 만동설을 주장하지 않는다. 차전놀이처럼 높이 날고 싶을 때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먼저 뼈를 가볍게 해야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그 너머 보이지 않는 손길을 같이 느낄 때 비로소 서로가 특별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 글의 포맷은 유형진 시인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바나나파이를 었다>에서 따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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