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윌마 Feb 14. 2023

나는 사랑을 걱정하지 않는다

사랑은 스스로 자신을 알아가는 자유입니다

(다비드 자맹展, 2.4~4.27, 더현대서울 ALT.1)

http://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16566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얼굴을 포갠 두 사람은 한 없이 편해 보입니다. 젊은 연인에게서 아무런 그늘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제 막 시작되는 사랑일까요? 고요한 연인의 얼굴에 싱그러운 기운이 피어납니다. 겨우내 얼었던 대지를 비집고 올라와 봄 햇살에 얼굴을 맡긴 채 잠시 숨을 고르는 새싹 같습니다.


나는 뭉클했습니다. 이내 그들을 응원해주고 싶었습니다. 프레임 밖에는 숙명처럼 맛보게 될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아니 폭풍우는 참고 기다리는 법을 모릅니다. 프레임을 부수고 들어와 두 사람을 흔들어 깨울지도 모릅니다. 나는 숨을 죽인 채 그림 앞을 지키고 서 있습니다. 폭풍우는 서로 힘을 합쳐 넘어야 할 공동의 난관이지요. 폭풍우가 오래 지속되면 다정했던 그 사람과 더 이상 한 배를 탈 수 없는 상황이 오기도 합니다. 이런 염려와 상관없이 젊은이들은 다른 세상을 사는 듯 평온합니다. 순간, 그들을 응원하려 했던 나는 무색해집니다.


그 어떤 사심(私心)도 통하지 않는 젊은이들 앞에서 나의 염려가 오만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뭉클해질 때, 마음이 열리고 사랑은 시작됩니다. 여전히 밀려드는 뭉클함은 다름 아닌 나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의 고요함 위로 폭발하는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각자 그리고 서로 생동하는 그들을 보면서 나 역시 생동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내 자신을 응원해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차마 생동하지 못할까 두려워 그들에게 나의 껍데기를 씌우고, 응원하겠다며 손을 내민 겁니다.


생각해 보면 산다는 것은 안과 밖에서 색을 입히는 일입니다. 맘에 드는 색은 즐겁게 입히고, 맘에 들지 않은 색은 힘겹게 입힙니다. 이렇게 색에 묻혀 살다 보면 그 많은 색 중에서 나를 살게 하는 색이 궁금해집니다. 나를 살리는 색을 만나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죠. 시간이 흐르면 색은 바래지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자주 색에 지칩니다. 그럴 때면 색이 없는 삶이 낫겠다고 생각합니다. 무색의 삶은 어떻게든 살겠다고 함부로 떠올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나와 주위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 너그러워졌을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어떻게든 살아지는 건 세상에 없습니다.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자신을 살게 하고, 서로를 살게 하고, 더 나아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를 살게 합니다. 사랑을 받고 싶은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사람은 불안해집니다. 우리는 사랑에 목매달고 사랑을 걱정합니다.


때로는 누군가를 향한 갈망을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상대를 향한 갈망은 불같이 타오를 때에는 보이지 않지만, 재가 날리는 뒤안길에 서면 결국 자신의 욕구를 상대에게 투사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메꿔주지 못했던 애증 같은 것이지요. 사랑했지만, 결국 떠나야 했던 수많은 만남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부모가 자신의 미성숙한 동기를 무의식적으로 자녀에게 강요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은 자신의 이유(自由)로 발견한 생생하고 환한 것입니다. 한없이 탐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소유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알아가는 자유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향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과 만나는 일입니다.


정신의학자 머레이 보웬은 '정서는 동기를 부여하는 힘이며, 관계는 그것이 표현되는 방식'이라고 했습니다. 생동하고 싶다는 나의 동기는 당신과 함께 있기에 가능합니다. 오늘은 나를 얽매는 과거와 미래 모두 버리려고 합니다. 아니 오늘마저 지워버려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합니다. 화려한 색채와 감각적인 표현에 끌려 그림 앞에 섰다면 이제는 색채도 표현도 거둬낼 시간입니다. 당신이 있어 내가 생동합니다. 내가 있기에 당신이 생동합니다. 함께 있기에 서로 생동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릅니다.


입춘이 지났습니다. 봄은 땅을 가리지 않고 피어납니다. 봄 햇살은 자리를 가리지 않고 내립니다. 나는 봄 햇살을 걱정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사랑은 봄 햇살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죠. 나는 사랑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봄이 왔건만 생동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염려할 뿐입니다. 다비드 자맹의 <사랑>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기 앞의 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