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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마 Feb 28. 2023

사람의 진실은 깨진 거울 사이로 보인다

그림은 깨진 거울이다

http://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18708

<나르키소스> 1599,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인간아! ”

부끄러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때, 거울에 보이는 자신을 향해 툭 터져 나오는 한숨이지요.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오래 삭힌 울음입니다. 한 동안 거울을 뚫어지게 쳐다봅니다. 그런다고 거울은 뚫리지 않습니다. 이내 물로 얼굴을 몇 번 식히고 머리와 매무새를 다듬고 나서 밖으로 나옵니다. 부끄러운 짓을 멈출까요?


무경어수 경어인(無鏡於水 鏡於人). 물에 얼굴을 비추지 말고 사람에게 비추어야 한다고 합니다. 물이나 거울이나 매 한 가지죠. 사람은 내가 옳고 남이 틀리다는 마음으로 진화했습니다.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왼편과 오른편으로 나누면, 처음 만났는데도 자기편 사람들이 상대편보다 똑똑하고 믿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도덕적으로도 옳아 보이고요. 그게 사람의 마음입니다. 하물며 거울에 보이는 자기 자신은 어떻겠어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반성의 끈을 놓지 않기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견고하게 만들죠. 아침에 화장실에 다녀오면 멋진 사람으로 바뀌어 나오잖아요.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은 사람에게 비추어야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어머니에게 비추어야 자신의 불효를 알 수 있지요. 사이가 틀어진 친구에게 비춰야 자신이 얼마나 모진 사람인지 보입니다.


“인간아!”라는 울음으로 부끄러운 짓을 멈추지 못하면 다음은 포효하는 외침입니다. 거울에 보이는 얼굴이 꼴도 보기 싫어서 짱돌을 들어 거울에 던져 버리죠. 거울에 보이는 사람은 결코 자신이 될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사람의 진실은 깨진 거울 사이로 보이는 겁니다. 사람의 본성은 깨진 거울 너머에 있고요. 거울은 겉모습만 천착하게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물에 얼굴을 비추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공은 미소년 나르키소스입니다. 아름다운 모습에 요정들로부터 사랑을 받지만 나르키소스는 모두 거절합니다. 그에게 실연을 당한 숲의 요정 에코는 몸은 사라지고 목소리만 남게 되죠. 이에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는 나르키소스에게 자기 자신을 알게 하는 벌을 내립니다. 끝내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게 되고, 그 아름다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목숨을 잃습니다.


화가들에게 나르키소스는 자기애를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소재입니다. 대부분의 화가들은 물에 비친 나르키소스를 아름답게 그렸습니다. 하지만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3~1610)는 달랐습니다. 물에 비친 나르키소스 모습을 어둡고 추하게 그렸습니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평소에 접했던 다른 화가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줍니다. 강한 빛과 어둠을 대조적으로 표현해서 장면에 극적 긴장감을 불어넣는 방식이 그렇고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들을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도 신선했지요. 심지어 성모 마리아의 얼굴에 자신과 사귀던 창녀 얼굴을 그려 넣을 정도였으니까요. 과한 면도 있지만 정형화된 그림에서 느껴지던 거리감이 사라지면서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특히 카라바조의 자화상은 그 자체로 타협 없는 묘사의 정수입니다. 자신의 내면에 부유하는 추악함을 실오라기 하나 가리지 않고 드러내는 일은 보는 이에게 잔혹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카라바조의 <나르키소스> 그림은 신화를 그린 그림이면서 또한 자기 자신을 그린 자화상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양날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요. 미소년의 모습도, 물에 비친 추악한 모습도 모두 자신의 모습입니다. 카라바조는 극단적 자기애의 표본 나르키소스를 자신과 동일시했습니다. 기독교적 질서가 지배하는 광기의 시대에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다르게 표현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틀린 것이었죠. 카라바조는 살아남기 위해 악동처럼 굴었고, 자신을 몰아세우는 세상이 미워서 더 악동처럼 행동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지만, 자신만은 스스로를 인정해 주어야 했습니다.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감추지 않고 그림에 담아 자신에게 짱돌을 던지면서도, 그 너머에 있을 자신의 진심에 공감해 주었던 것이죠. 카라바조가 바라본 물은 결코 거울이 될 수 없습니다. 자신을 하얀 캔버스, 바로 그림에 비춘 것이죠. 그림은 깨진 거울입니다. 깨진 거울 사이로 보이는 카라바조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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