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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마 Sep 21. 2020

억압, 내 삶을 관통하는 방어기제

역할이라는 수단에 매몰되지 않기


일상의 쉼터인 미술관, 차분하게 그림과 대화를 나눠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다시 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빠지느니 차라리 이대로 눈을 감고 종종걸음으로 지나쳐버리고 싶은 순간 말입니다. 그동안 미술관에서 이런 충동과 싸우느라 불편했던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강렬한 감정과 넘치는 에너지가 도무지 어디를 향해 터질지 모르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때문입니다. <해바라기>의 따스한 노란색, <고흐의 방>에 흐르는 꿈틀거리는 생동감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 나는 고흐의 그림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그토록 따스했던 색채가 동시에 절망으로 표현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우체부 조셉 룰랭의 초상은 따뜻하게 그리면서 정작 자신의 초상은 고통스럽고 불안하게 그렸던 고흐입니다.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렘브란트나 자의식으로 가득한 뒤러의 자화상에서는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표정 하나 없이 입을 굳게 다문 그를 온전히 대면할 수 없었습니다.


고흐는 태어나면서 칼뱅파 목사의 맏아들이었고, 미술품 상점의 점원이었습니다. 목사가 되고픈 신학도였지만 실패한 후 화가가 되었죠. 고흐처럼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다양한 역할을 부여받습니다. 자신을 꾸며주는 타이틀이 자신의 가치를 대변하는 시대입니다. 이름 앞에 타이틀이 붙기 시작하면 타이틀은 자신의 가치를 고정된 틀 안에 가두기 시작합니다. 무엇에 가치를 둘까 고민하기보다 그 역할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로 자신을 정의하기에 바쁩니다. 선택의 순간에 서면 자신이 원하는 기대보다 주위의 기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하지만 타이틀은 오래가지 않지요. 자기의 이유에서 비롯되지 않는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고흐는 청년시절부터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감자를 먹는 사람들>에는 힘겨운 노동과 정직하게 얻어낸 식탁을 희미한 램프 아래에 그려냈습니다. 가난은 비참하니 풍요로운 식탁을 추구해야 한다는 계몽주의적 연민으로 삶과 노동의 존엄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그림으로만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동료 화가들이 생계 걱정 없이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화가 공동체를 꿈꾸었죠. 고흐는 평생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눈으로는 빛과 공간 그리고 색을 수단으로 외부에 비치는 자신을 바라봅니다. 그렇지만 마음으로는 내면의 고통과 불안을 피하지 않고 들여다보았습니다. 자신을 그리면서, 그려진 자화상을 바라보면서, 한 번도 불편하지 않은 적이 없었을 겁니다. 거듭되는 실패로 추락하는 자존감은 피할 수 없었지만, 결핍을 인정하고 그대로 드러내었습니다. 삶과 그림의 결이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그림에 대한 단상을 담았습니다. 고흐의 자화상에는 뿌리 깊은 고뇌가 담겼습니다. 자화상에 담긴 고흐의 모습은 마지막 하나 남은 표정이 아니라 자신의 본연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새로운 출발점에 선 다짐으로 읽는 게 맞습니다. 고흐는 그림만큼이나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한 엔지니어는 회사가 아닌 자기 삶과 커리어를 위해 일한다고 합니다. 커리어가 쌓이고 발전해서 자신만의 색깔이 분명해질수록 회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죠. 위계 조직 사회에 익숙한 나는 회사와 맡은 역할을 위해 일을 했던 모양입니다. 어느 날 깨진 창문 사이로 욕구를 현실에 맞춰버린 내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내 욕구가 존중받지 못하면서 강제하는 방식이 그 자리를 대신했더군요. 강제하는 방식은 내 삶에 생산적이고 효과적으로 기여했습니다. 성실하고 눈치 있게 움직였기에 조직에서 꽤나 쓸모 있었지만 정작 내 자신에게는 어느 선까지였습니다. 부여받은 역할이 내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여부는 내가 선택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나에게 영향을 미칠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 역할을 어떻게 소화해 낼지는 선택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내 가치를 스스로 만들지 못한 벌로 나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이중의 삶을 살았습니다. 밖에 나가면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혼자 남으면 허깨비 같은 나를 붙들고 끝나지 않을 씨름을 했습니다.


정형화된 역할에 길들여진 나는 내 정체성을 이들 역할에 투사했습니다. 역할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어진 것인데 나의 본연의 가치로 잘못 이해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오히려 그렇게 사는 게 편했습니다. 따뜻한 아랫목 이불속에 숨어 찬바람 부는 바깥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미지근한 온기에 매달렸고 결국 냉방이 되어 삶이 바닥을 칠 때까지 나를 가두기에 급급했습니다. 마음의 울림을 외면하면서 고뇌가 숨 쉴 수 있는 작은 공간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될 수 있는 본능적 욕구나 충동을 의식으로부터 제거하는 방어기제를 억압이라고 합니다.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생각을 무의식에 가두는 과정입니다. 처음에는 의식했던 경험을 의식에서 제외시키거나 생각과 감정이 의식에 도달하는 것을 차단합니다. 억압은 욕구나 충동을 파괴하기보다는 무의식에 가두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내부에서 나오는 충동을 억제하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로 억압 외에도 다양한 방어기제가 있습니다. 일반인도 심리적인 안정감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사용하는 정신 행위이죠. 방어기제를 적절히 사용하면 일상에서 겪는 험한 풍파를 헤쳐가는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특정 방어기제를 지나치게 사용하는 것은 정신 건강을 해칩니다. 어릴 때부터 장성한 지금까지 내 삶을 관통하는 방어기제는 억압이었습니다. 부정, 투사, 전위, 합리화, 전치, 고립, 취소 같은 다양한 방어기제들을 적절히 사용할 줄 아는 천의 얼굴을 가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고흐와의 만남은 일종의 마주 보기 연습이었습니다. 억압이라는 방어기제 뒤에 묻어둔 내면의 욕구를 회귀시키는 계기였습니다. 언제쯤 고흐의 그림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고흐의 그림 너머에 보이는 내 자신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을까? 이런 궁금함도 서서히 풀렸습니다. 고흐의 그림이 불편했던 그 순간, 어떻게 하면 그림에 비치는 내 모습을 대면할 수 있을까 궁금해하던 그 순간들이 모두 답이었습니다. 고흐는 힘든 현실에도 자신을 수단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고흐가 자화상을 그리면서 포기하지 않았던 자신과의 마주 보기를 오늘은 내가 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바라보면서 불편하지 않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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