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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마 Jun 21. 2023

교도소대학, 대니얼 카포위츠

가장 낮은 곳에서 교양은 사람을 어떻게 높이는가


세상의 진실은 무질서이기에 결코 옳고 그름으로 나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우리 사회는 양극단으로 나뉘어 대립하기에 여념이 없다. 대립의 양상이 심각해질수록 대립하는 양극단만 부각되고, 새로운 선택지를 찾는 노력은 설 자리를 잃어간다.


선택지의 부재는 개인의 일상에서도 끊임없이 대립을 초래한다.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순응과 불복이라는 선택의 연속이다. 외부로 보이는 기꺼이 따를 의향과, 보이진 않지만 사회가 내세우는 도덕률과 바탕에 깔린 내부 논리에 따를 마음이 없는 저항감을 어떻게 하나의 자신 안에 조화롭게 묶어 낼 수 있을까?


이렇게 힘든 모순의 상황을 거치는 동안, 터널의 밝은 끝이 보이지 않으면 우리는 풍부했던 감정을 몽땅 지워버리고 억압과 체념 속에 살게 된다. 쉽지 않은 세상살이에 눌리고 눌리다 보면 어느 순간 화가 난다. 어린 시절부터 쌓여온 부정적인 자기 해석에 빗나간 인정 욕구까지 더해지면, 누구는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다가 범죄자가 되고, 아무 잘못 없는 누구는 느닷없이 피해자가 된다. 사건의 당사자는 물론 사건을 접하는 개인의 마음은 멍들고 우리 사회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는다. 무겁게 깔린 공기의 종착점은 교도소다.


원스턴 처칠은 범죄와 범죄자 처우를 대하는 대중의 정서와 감정을 한 나라의 문명 수준을 가장 잘 나타내는 지표라고 강조했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보물이 담겨 있다는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범죄자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뜻이다. 세금으로 범죄자를 교육시켜서 바깥의 누군가가 손해를 입는다고 호도할 게 아니고 모든 국민이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고 감당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안에는 사랑과 증오가 상존한다. 증오는 사랑의 반대말도, 지워야 할 감정도 아니다. 증오라는 안받침이 없는 사랑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교도소는 나의 이면이자 우리 사회의 쌍둥이 형제다.


사건이 발생하면 개인의 잘못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위험한 방식으로 화를 내지 않는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건강하게 화내는 일은 중요하다. 자기를 지킬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건강한 공격성은 내게 닥친 문제를 그런 방식으로 겪는 자신을 인식하고 다루는 공부를 통해 길러진다. 다만, 나는 우리의 논의가 건강한 공격성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구조적인 사회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한정 짓는 일이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우리의 논의는 새롭고 대안적인 존재 방식을 창출해서 사회의 다양성을 키우는 데까지 이끌어야 한다. 감옥 안에서 수형인을 대상으로 철학 수업을 했던 앤디 웨스트는 “교도소에 들어오면 독일 셰퍼드, 아니면 새끼 고양이가 된다.”라고 했다. 교도소가 다른 선택지를 주지 못한다는 뜻이다. 저항 대 굴종, 참여 대 억압, 이러한 모순적 사회구조에서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지켜 온 곳을 꼽으라면 바로 대학이다. 우리 사회에 대학이 필요하듯, 새롭고 대안적인 존재 방식을 찾게 해주는 대학은 교도소에도 필요하다.


미국은 교도소 대학을 운영 중이며, 공식 학사 학위를 수여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교도소 안에서 철학 수업을 열고 수형자들이 자유와 희망에 대해 묻고 토론한다. <교도소 대학>은 1990년대 말, 바드칼리지에서 맥스 케너와 동료들이 주도한 바드교도소사업단의 설립 과정과 첫 졸업생을 배출한 과정을 두루 돌아본 기록이다.


바드교도소대학은 바드칼리지 본교에서 운영하는 동일한 교육목표와 교육과정을 교도소에 적용한다. 단순한 기술교육은 세상에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변화에 제대로 대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교도소 수형인을 본교의 관행과 동떨어진 실험의 장으로 사용하지 않았고, 학위 수여에 필요한 눈높이를 낮추지 않았다. 교도소대학 사업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을 교도소나 교정사업에 두는 것을 거부했다. 선발과정은 논술과 면접 모두 까다롭게 적용했다. 학습에 필요한 능력과 변화에 대한 의지가 없는 학생은 선발하지 않았다.


“교도소에서 지내기가 점점 편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제가 필요한 것은 변화예요. 다르게 사는 것이었으면 해요.”

다르게 살고 싶다는 수형인들의 열망에 비해 교정 프로그램은 시키는 대로 따르기를 강요하는 성격이 강했다. 모욕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자신들이 처한 환경을 잘 알고 있는 제소 학생들은 교도소대학에 임하는 자세가 남달랐다. 학습 태도에는 절심함이 묻어났다. 교도소라는 제한된 환경과 정권에 따라 들쭉날쭉한 교도소대학 정책은 제소 학생들의 입지를 좁게 만들었다. 졸업을 할 수 있을까? 이 기나긴 대학 과정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대학 교수와 관계자들을 교정당국에 부역하는 사람으로 여기고 대학에 참여하지 않는 수형인도 있었다.


바드교도소대학 학위 수여자들은 출소 이후 일부는 석사 과정을 밟았고, 대부분 취업해서 사회에 기여했다. 교도소 안에서 대학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일은 비용이 크게 들지 않고 국가 재정에 미치는 유익은 크다는 조사가 있다. 뉴욕 전체의 재범률은 40% 정도이고, 바드교도소대학에 참여한 학생 전체의 재범률은 4% 수준이고, 학위를 취득한 경우는 2% 수준이었다. 수형인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 사회를 향한 분노를 자기 이해를 통해 해소하지 못하면 그 화는 언젠가 다른 형태로 터져나올 것이다.


인문공동체 책고집 최준영 대표는 <교도소 대학> 책 서문에 공유되지 않는 경험은 경험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국내에서 파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교도소 인문학에 대한 공론화를 희망했다. 그리고 2023년 6월 사단법인 인문공동체 책고집 출범에 즈음해서 교도소대학 설립을 제안하며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 첫 발을 내디뎠다.


교육적 시도라면 어떤 것이든 그 중심에는 변화가 가능하다는 믿음이 자리한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 감옥은 인간 이해와 변화 측면에서 “대학“으로 불린다. 또 하나의 현장이고 사회학 인문학 교실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수형인 끼리 부대끼면서 몸으로 체득해서 찾는 변화의 끈도 중요하지만, 그 끈을 놓지 않고 묻고 토론하며 학문(學問)과 사유에 체계가 잡히도록 함께 끌어갈 공간은 더욱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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