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마신 것도 아닌데 갑자기 머리가 명쾌해지거나
‘오늘 너무 컨디션 좋은데?’했는데 침대에 눕자마자 잔다거나
몸과 머리의 상태가 급격히 바뀌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눈을 떴을 때 주변이 깜깜해서, 아직 한밤 중이라는 걸 깨달았고 적응할 필요 없이 갑자기 머리가, 몸이 잠에서 깼다.
거실에 나오니 춥다.
'새벽 감성은 나한테 없네, 유튜브는 못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보리차 한잔을 마시면서 뭉쳐진 마시멜로처럼 웅크려 멍 때렸다.
육아에 재능 없음을 증명하는 나날이라 생각했는데
정말 육아에 최선을 다했나 하면 그건 아니었네 라는 작은 깨달음을 가지고
직장 생활 더는 못하겠네라고 생각한 나날이라 했는데
정말 못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도 했다.
회사에 나갈 때는 출근과 퇴근이라는 커다란 시간 통이 있다.
그 안에서 쪼갠다면 동료와의 티 타임, 이런저런 회의와 업무 집중 시간, 점심 등의 ’ 우선하고 잠시 쉰다 ‘의 1~2시간짜리 시간 단위가 있었다.
일단 회사를 나가지 않게 되니
1~2시간짜리의 단위보다는 30~50분 단위의 일들이 끊임없다.
아침밥을 차리고 아이들 깨워 준비를 도와주고 아침을 먹인 후 학교에 보내는 것이 1시간 내.
침구 정리를 하고 청소기 돌리고 빨래 분류하고 혹은 돌리고 나면 30분.
잠시 앉아 커피 마시기 15 분, 설거지 후 스팀 청소기를 돌리기 30분.
.. 로봇 청소기 살걸.
.. 식기세척기도 살걸.
힘든 회의를 하거나 중요한 일을 끝내고 나면
그 시간이 매우 크게 각인되어 '나 오늘 많은 걸 했네!'라고 덩어리가 느껴지는 것이 회사의 시간이었다면
같은 강도의 무언가를 계속하는 것이 요즘이라 '나 오늘 바빴는데.. 뭐 했더라?"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 집의 시간인 것 같다.
그리고 항상 이런 생각 끝에는
'이 시간을 더 알차게 써야 하는 데'라는 초조함은 계속 붙는 꼬리표로.
카드값이 줄어든 것에 놀라고
(4인 식구 이 돈으로 살아지는 거였다!)
돈을 벌기 때문에 비교를 덜했던 것을 자연스레 비교하게 되었으며 마트에서 버섯이 전주보다 100원 비싸진 것에 경악하며 내려놓기도 했다.
버섯 최애인데.
한 달의 시간 동안 뭘 했는지 여전히 기억 못 하며 빨래하고 청소기를 돌린다.
'왜 청소기 돌린다-라고 할까. 집안 구석구석 도니까 돌린다 하나'라는 쓸데없는 생각도 하면서.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지인들에게 전달한다.
회사 생활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하면서 다시 회사에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보면
5년 후의 내가 뭐라고 할지 궁금해지지만 (사실 혼날까 봐 무서워지지만)
그냥 백수에서 '구직하는 백수'로 바뀐 요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