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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깡의 짜투리 Dec 18. 2024

그냥 백수 아니고

# 아무것도 아닌 새벽


차를 마신 것도 아닌데 갑자기 머리가 명쾌해지거나

‘오늘 너무 컨디션 좋은데?’했는데 침대에 눕자마자 잔다거나

몸과 머리의 상태가 급격히 바뀌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눈을 떴을 때 주변이 깜깜해서, 아직 한밤 중이라는 걸 깨달았고 적응할 필요 없이 갑자기 머리가, 몸이 잠에서 깼다.


거실에 나오니 춥다.

'새벽 감성은 나한테 없네, 유튜브는 못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보리차 한잔을 마시면서 뭉쳐진 마시멜로처럼 웅크려 멍 때렸다.


육아에 재능 없음을 증명하는 나날이라 생각했는데

정말 육아에 최선을 다했나 하면 그건 아니었네 라는 작은 깨달음을 가지고

직장 생활 더는 못하겠네라고 생각한 나날이라 했는데

정말 못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도 했다.




# 서로 다른 시간


회사에 나갈 때는 출근과 퇴근이라는 커다란 시간 통이 있다.

그 안에서 쪼갠다면 동료와의 티 타임, 이런저런 회의와 업무 집중 시간, 점심 등의 ’ 우선하고 잠시 쉰다 ‘의 1~2시간짜리 시간 단위가 있었다.


일단 회사를 나가지 않게 되니

1~2시간짜리의 단위보다는 30~50분 단위의 일들이 끊임없다.

아침밥을 차리고 아이들 깨워 준비를 도와주고 아침을 먹인 후 학교에 보내는 것이 1시간 내.

침구 정리를 하고 청소기 돌리고 빨래 분류하고 혹은 돌리고 나면 30분.

잠시 앉아 커피 마시기 15 분, 설거지 후 스팀 청소기를 돌리기 30분.


.. 로봇 청소기 살걸.

.. 식기세척기도 살걸.



힘든 회의를 하거나 중요한 일을 끝내고 나면

그 시간이 매우 크게 각인되어 '나 오늘 많은 걸 했네!'라고 덩어리가 느껴지는 것이 회사의 시간이었다면

같은 강도의 무언가를 계속하는 것이 요즘이라 '나 오늘 바빴는데.. 뭐 했더라?"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 집의 시간인 것 같다.


그리고 항상 이런 생각 끝에는

'이 시간을 더 알차게 써야 하는 데'라는 초조함은 계속 붙는 꼬리표로.



# 그냥 백수 아니고


카드값이 줄어든 것에 놀라고

(4인 식구 이 돈으로 살아지는 거였다!)


돈을 벌기 때문에 비교를 덜했던 것을 자연스레 비교하게 되었으며 마트에서 버섯이 전주보다 100원 비싸진 것에 경악하며 내려놓기도 했다.

버섯 최애인데.


한 달의 시간 동안 뭘 했는지 여전히 기억 못 하며 빨래하고 청소기를 돌린다.

'왜 청소기 돌린다-라고 할까. 집안 구석구석 도니까 돌린다 하나'라는 쓸데없는 생각도 하면서.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지인들에게 전달한다.

회사 생활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하면서 다시 회사에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보면

5년 후의 내가 뭐라고 할지 궁금해지지만 (사실 혼날까 봐 무서워지지만)


그냥 백수에서 '구직하는 백수'로 바뀐 요즘

저는 별 것 없는 매일을 참 잘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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