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반, 타의반으로 한없이 늘어졌던 쿠스코에서의 일정도 이제 거의 끝났다. 아침 일찍 살가도, 일명 성스러운 계곡 투어를 시작해, 오얀따이땀보에서 잉카레일을 타고 마추픽추 마을로 알려진 이구아스 깔리엔떼스로 향하는 일정이다.
정들었던 호스텔을 떠나 투어 에이전시 사무살에 짐을 맡겨두고 파비앙과 한 참 수다를 떨다가 투어 시작시간을 놓쳐 버렸다. 부리나케 택시를 잡아타고 투어버스가 있는 곳으로 출발, 겨우겨우 투어에 합류할 수 있었다.
성스러운 계곡 투어의 첫번째 목적지는 '작은 마추픽추'라 불리는 피삭이란 곳이다. 마추픽추를 이미 보고 온 사람들은 왜소한 규모에 적잖이 실망한다고 하는데, 아직 마추픽추의 위용을 접해보지 못해서인지 나는 이곳이 꽤 마음에 들었다. 피삭에는 주거지와 농경지, 신전 등 고대 잉카의 마을이 갖는 요소들이 빠짐없이 갖춰져 있었다.
다만,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자유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 산 위에 있는 주거지까지 올라가지 못했다는 점. 뭐 , 단체여행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뭐 어쨌든 간단하게나마 피삭을 둘러본 후, 보석을 가공하는(?) 작은 상점에 들렀다. 패키지 여행에 빠질 수 없는 쇼핑타임! 그런데 가이드에게 떨어지는 커미션이 좀 많은 곳인지, 여기서 거의 두 시간을 머물렀던 것 같다. 차라리 그 시간을 쪼개서 피삭에서 자유시간을 좀 더 줄 것이지 ㅠㅠ
드디어 점심시간, 이번 투어의 점심은 오얀따이땀보로 가는 길목에서 부페로 진행된다. 점심식사는 투어비와 별도로 계산해야 하는데, 보기와는 달리 가성비가 그리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나는 따로 빵과 음료를 준비해갔다. 일행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밖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것을 구경하며, 빵도 같이 나눠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환상적이진 않았지만, 나름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쿠스코에 도착해서야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한 탓에 조금 이른 시간에 기차에 올라야 했다. 덕분에 오얀따이땀보에서의 투어는 참여하지 못하고 홀로 기차역으로 향했다.
잉카레일 앞에서 자랑스럽게 기념사진도 한 장 찍었다. 그런데, 당시엔 몰랐지만 사진 속에 자켓이 보이지 않는다. 더운 날씨에 가방에 자켓을 걸어놓고 돌아다니라 흘린 것인지, 버스에 두고 내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한동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젠장, 다음날 새벽 일찍 길을 나서야 하는데, 완전 망했다.
쿠스코에서부터 마추픽추로 떠나기 전까지, 무슨 놈의 기차가 그리 비싸냐고 투덜대곤 했었는데, 막상 잉카레일에 올라타니 제법 분위기가 나쁘진 않았다. 페루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쿠션 좋은 의자에 엔틱한 실내 디자인까지, 그야말로 퍼스트 클래스 좌석의 위용이 느껴졌다. 그치만, 주머니 얇은 배낭여행객 입장에서는 질을 좀 낮추더라도 저렴한 가격에 티켓을 팔아 드셨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110달러가 넘는 왕복 티켓은 아무래도 좀 부담스러우니까,
열차 안에서 막상 할 것도 없고, 그저 빈둥대다 찍은 옆자리 여인네의 자태. 도촬이었지만 퀄리티가 꽤 마음에 들었다. 사진을 보여주며 이메일 주소라도 물어볼까 했지만, 괜히 귓방망이라도 날라오면 어쩌나 싶어 꾹 참았다. 대신 여기에 사진을 올리는 걸로, ㅋ 얼굴 정면이 나온 것은 아니니 초상권 문제에 걸리는 것은 아니겠지?
뭐 보시다시피 이런저런 의미없는 일들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기차가 어느새 마추픽추의 마을,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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