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같이 뭉칠 사람 여기여기 붙어라!
경제학에 네트워크 효과라는 개념이 있다.
특정 상품의 수요가 다른 사람의 수요에 영향을... 어쩌고 하는 이론적인 설명은 집어치우기로 하고,
어느 날 엄청나게 좋은 SNS를 발견했다고 치자.
뭐 대충 브런치 같은 서비스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마음에 드는 글을 발견한 나는 그 글을 친구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내 주변에 그 SNS를 이용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 뭐 아쉬운 대로 글을 긁어다가 카톡으로 보내기도 하고, 기가 막힌 사진을 발견했던 어떤 날엔 캡쳐를 하기도 해봤는데, 이게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점점 지쳐버린 끝에 그 SNS를 이용하는 빈도가 줄어들었고, 그렇게 서비스에 대한 나의 수요는 사라져버렸다.
아, 물론 브런치를 이제 더 이상 이용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일반적으로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가격과 품질에 대한 함수라고 한다. 쉽게 말해서 고객을 많이 모으기 위해서는 가격을 낮추거나 품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사례에서처럼 일부 서비스의 경우에는 가격과 품질 외에도 '다른 사용자의 수'가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나의 수요가 결정되기도 한다. 이게 '네트워크 효과'의 기본개념이다.
이는 비단 서비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한때 중고등학생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노x페이스' 패딩을 떠올려보자.
처음에는 일부가 입고 다녔던 패딩점퍼가 어느 날 유행을 타기 시작한다. 패딩에 별 관심이 없었던 아이들까지 주변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입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점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노스x이스를 입지 않으면 그들만의 사회에서 도태되는 느낌까지 받는다. 이쯤 되면 이제 더 이상 가격이나 품질이 문제가 아니다. 네가 입으니, 나도 입어야 한다는 묘한 의무감만이 남았을 뿐,
반대의 사례도 있다. 남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군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남들은 다들 국방색 '브레이브맨'을 걸치고 있을 때, 나만 홀로 새하얀 사제팬티를 입고 있을 때 느끼는 쾌감, 경험해보지 않은 자는 결코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없다. 켈빈클라인부터 아르마니까지 누구나 자유롭게 사제팬티를 소비하는 사회에서는 결고 느낄 수 없는 소비자 효용, 그것을 느끼기 위해 일부 부대에서는 '상병이하 사제팬티 금지'라는 불문율이 존재하기도 한다.
경제학원론에서는 '노스페이스'를 '양의 네트워크 효과', '사제팬티'의 경우를 '음의 네트워크 효과라고 설명한다. 남들이 다들 소비하는 것에 대한 소비욕구가 끓어오르면 '양의 네트워크 효과', 남들이 소비하지 않는(못하는) 것을 소비할 때 묘한 쾌감이 든다면 '음의 네트워크 효과'가 존재한다고 보면 된다.
그냥 생각 나는 대로 글을 끄적이긴 했는데, 이걸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까?
일단 다시 브런치의 사례로 돌아가보자.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네이버 블로그, 티스토리 등... 2015년, 지금 이 순간 SNS 시장은 이미 거대한 공룡들로 넘쳐 난다. 약육강식의 이 정글에 뛰어든 브런치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기존 공룡들의 한 끼 브런치 식사로 전락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을 SNS라는 시장에 서식하는 공룡들은 서로 치열하게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 서로 도와가며 아주 화목하게 잘 살고 있다는 점이다. 소셜 댓글이라는 기능을 통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계정으로 블로그에 댓글을 달기도 하고, 페이스북에 글을 남기면 자동으로 트위터에 해당 글이 올라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되기도 한다. 다른 SNS 계정을 이용해 편리하게 로그인을 할 수 있는 SNS 서비스도 많다.
세탁기 하나 때문에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삼성과 LG의 다툼을 떠올려보면, 이는 분명 이례적인 일이다.
이들의 평화는 과연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 기업들이 워낙에 착해 빠져서 일어나는 현상일까?
아마도 그건 SNS 시장의 묘한 특성 때문일 것이다. 세탁기 시장에서 경쟁하는 삼성과 LG는 상대방의 점유율을 빼앗아 오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대부분의 제품 시장은 제로섬 게임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SNS 서비스 시장에서는 정확히 제로섬의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 무슨 말인고 하니, 페이스북을 이용하던 내가 트위터를 시작한다고 해서 페이스북을 당장 그만두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삼성 세탁기를 새로 구입하면서 기존에 있던 LG 세탁기를 갖다 버리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물론, 여기에는 트위터를 시작하면서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시간이 줄어들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SNS 시장에서는 상대방의 고객을 빼앗아 오는 것보다, 서로의 고객을 공유하는 것이 훨씬 더 이익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SNS 서비스의 경쟁력은 서비스를 이용자의 규모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흔히, 기업들도 상생을 도모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언뜻 좋은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네가 아니면 내가 죽어야 하는'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상대방과 상생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쩌면 SNS라는 '네트워크 효과가 강하게 발생하는' 산업군에서는 경쟁보다는 상생, 약탈보다는 공유가 우선시되는 이상적인 모습이 연출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적어도 당분간은 말이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카카오톡이라는 국내 최고의 SNS 서비스를 등에 업은 브런치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여줄 것인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더불어, 그 행보에 나도 좀 업고 갔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