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노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행길에 오르다.

한 남자의 미친 여행, 그 첫 번째 이야기

by panKo
"뭐, 그건 내가 한번 알아볼 테니까, 암튼 몸 건강히 잘 다녀와라."
"그래, 그리고 이 거 한 달만 좀 부탁한다."
"어, 근데 그냥 이렇게 갔다 오면 되는 거냐?"
"몰라~ 그냥 어떻게 되겠지..."


캐리어 하나를 친구에게 던져주고 돌아섰다. 텅 비어버린 방은 내가 이 곳에 도착했을 때의 모습과 흡사했다. 남들은 설렘에 잠을 설친다는데, 그날따라 유독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동안 이 곳이 어지간히도 익숙해지긴 했다보다. 이른 새벽, 혹시라도 빠뜨린 것은 없는지, 침대 밑과 욕실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핀 후 미리 챙겨둔 배낭을 들쳐 메고 길을 나섰다. 2015년 7월 28일, 그때 그 길을 또 걸을 수 있는 날은 아마 오지 않겠지?


벌써 올해에만 세 번째, 공항으로 가는 길이 너무도 익숙하다. 처음에는 어떤 터미널에서 내려야 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곤 했었는데, 이젠 제법 길을 안다고 주변에 앉은 사람들에게 이번에 내려라, 다음번에 내려라 식의 오지랖도 부려본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와이파이부터 찾아 친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긴다.


'잘 다녀올게. 아마 카톡이 잘 되진 않을 거야. 페이스북으로 사진 많이 올릴게'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이야기지만, 나한테는 중요한 것들을 몇 마디 문장으로 남긴 후, 핸드폰 전원을 내렸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후, 배낭 하나만 들쳐 메고 비행기에 올랐다.


자리에 앉아 신발을 벗고 헤드폰을 썼다. 잠시 후, 부웅~하는 소리와 함께 비행기가 서서히 움직인다. 기체 앞쪽이 들리는가 싶더니 비행기가 덜컹거리며 구름 위로 솟아오른다. 궤도에 올라섰는지, 자리가 편안해진다. 비행기가 다시 땅으로 내려오기까지는 앞으로 12시간이나 남았다. 제법 오랜 시간이지만 적응해야 한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이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길에서 보내게 될 테니까. 침대에 누워 양을 세는 기분으로 지난날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낮밤도 계절도 모두 반대인 지구 반대편 남미를 여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학생이라면 돈이 없어서, 직장인이라면 시간이 없어서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일이다. 하늘이 도운 것일까? 회사를 다니다 1년 동안 MBA를 하게 되었고, 돈과 시간 모두 풍족하진 않지만, 남미를 다녀올 정도는 된다.


아마 이번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하겠지? 마지막 방학은 남미에서 보내자!


뭐, 내가 남미행 비행기에 오른 이유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대충 이 정도가 아닐까?


여행을 준비하면서 방문 국가와 도시, 대략적인 일정을 알아보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남미 현지에서 가이드가 붙는 투어 프로그램도 알아보고, 블로그와 카페도 여러 군데 뒤져보았다. 하지만 도무지 감이 오질 않는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오지*어'라는 여행사를 알게 되었고, 거기서 운영하는 29박 30일짜리 여행 코스가 눈에 들어왔다.

(페루) 리마 - 이카 - 쿠스코 - (볼리비아) 라파즈 - 우유니 - (아르헨티나) 살타 - 부에노스아이레스 - 이과수 - (브라질) 이과수 - 리우데자네이루


'오지투*'를 이용할 경우 110만원의 가이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밥값, 숙박비, 교통비 등 여행경비와 별개로 단순히 가이드를 쫓아다니는 명목으로 말이다. 그래서 그냥 혼자 움직이기로 했다. 돈도 아끼고, 무엇보다도 예측하지 못한 재미있는 일을 만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은 게을러서) 숙소도 교통편도 정해두지 않은 채 비행기에 올랐다.


숙소와 교통편은 그렇다쳐도 전체적인 예산 계획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예산은 그야말로 천차만별. 여행하는 사람의 취향과 불편함을 참아낼 수 있는 마음과짐과 밀접하게 연관된 부분이다. 짱구를 굴린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고심끝에 100달러짜리 10장과 50유로짜리 2장을 챙겼다. 물론 한 달간의 여행경비로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너무 많은 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것도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모자란 돈은 그때 그때 인출해서 쓰기 위해 시티카드도 한 장 지갑에 끼워두었다. 적절한 선택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렇게 무사히 돌아와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보니 나쁜 선택은 아니었나 보다.

천성이 쫄보라, 100만원 남짓한 돈을 가지고 다니는 것도 숙소에 두고 다니는 것도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현금의 일부를 신발 깔창 밑에 두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돈을 분실하지는 않았지만, 장기간 여행을 하면서 돈을 꺼낼 때마다 느꼈던 찝찝함과 창피함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참고로 브라질에서는 지폐 모퉁이가 훼손되었다면서 환전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갑자기 자극적인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기내식을 먹을 시간인가 보다. 생선 대신 파스타를 골랐는데, 보기보다 맛이 괜찮았다.


대개 한국에서 남미로 떠날 때는 미국이나 캐나다를 경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 비자가 있다면 달라스 공항에서 환승하는 것이 보통이고, 그렇지 않다면 캐나다 항공을 타고 토론토를 통해 남미로 들어간다. 이는 일본에서 떠날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가 항공권을 알아보던 당시에는 북미지역을 경유하는 것보다 암스테르담을 통해서 가는 항공편(KLM)이 약간 저렴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암스테르담에서 스탑오버를 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다.(암스테르담에서 18시간 대기 후, 리마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는 일정이다.) 어차피 남미는 지구 정 반대에 위치한 대륙이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가든 왼쪽으로 가든 시간 상 별 차이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KLM으로 항공사를 결정했다.

<남미로 가는 항공권 예매하기>

한국에서 떠나는 거라면 인터*크 사이트에서 최저가 항공권을 검색했을 테지만, 일본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해외 항공권 비교 사이트를 활용했다. 스카이스캐너(www.skyscanner.co.kr)와 카약닷컴(www.kayak.com)을 활용하면 저렴한 항공권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나는 인터페이스의 편의성 때문에 카약닷컴을 조금 더 선호한다.


남미 여행 일정 중에 볼리비아가 들어 있다면, 비자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대한민국 여권은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힘(별도 비자 발급 없이 입국 가능)을 가지만, 몇몇 예외 국가가 있는데, 볼리비아가 그중 하나다.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황열병 예방 접종 영수증 등 몇 가지 구비서류를 갖추고 주한 볼리비아 대사관을 찾아가야 한다. 하지만 일본에 머무르고 있는 나는 비자를 받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일단 황열병 예방 주사가 문제다. 일단 일본어를 전혀 못하고 황열병을 영어로 설명할 자신도 없다. 다행히 쿠스코에 가면 황열병 예방 접종 영수증 없이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일단 가서 부딪혀보기로 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중에 확인하시라.


어느덧 비행기가 첫 번째 목적지인 암스테르담에 가까워졌나 보다. 승무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진다.여행을 떠나기 전, 일본 생활을 마무리짓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던 나의 모습이 묘하게 오버랩된다.


여행을 마치고 나면 거의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일본 생활을 대충 정리해 놓아야 했다. 우체국 예금 계좌부터 연금, 유학생 보험, 심지어 핸드폰까지... 처리해야 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기숙사도 남미 여행을 떠나는 7월 28일 자로 계약 기간을 변경했다. 짐을 둘 곳이 없으니 한국으로 보낼 것은 보내고 남은 짐은 캐리어 하나 분으로 꾹꾹 눌러 담아 MBA를 함께하는 한국 친구에게 부탁했다. 여행을 마치고 이틀 간 지낼 숙소도 문제다. 일단은 친구가 교회 지인분께 부탁해 보겠다고 했다. 대책없이 떠나는 내게 미친놈이라는 칭찬을 건네면서 말이다.


기말고사까지 겹쳐 며칠 간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시간이 흘러 하나씩 일이 정리가 되고, 결국에는 '이제 여행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바쁘게 움직이던 승무원들도 이제는 정리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맨다. 곧이어 기체가 살짝 흔들리더니 땅에 바퀴가 내려앉는다.


이제 여행이 시작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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