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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Ko Mar 10. 2016

코치니요, 꽃할배도 반한 세고비아 전통요리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기 그 여섯 번째 이야기

스페인 여행을 준비 중인가? 지금 당장 노트를 펴라. 그리고 받아 적자.

<세고비아의 관광 포인트 Top 3>
① 악마의 다리(로마 수도교)
② 세고비아 대성당
③ 백설공주의 성(알 카사르)

만약 누군가 내게 세고비아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묻는다면, 관광 포인트 세 곳을 본 후, '코치니요 아사도'를 먹으라고 할 것이다.


오후 7시 반, 알 카사르 내부 관람까지 마친 후 저녁을 먹으러 출발했다. 12시 점심 - 6시 저녁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배고픔을 견디기 힘든 시간이지만,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저녁 치고는 이른 시간이다.


알 카사르에서 아소게호 광장으로 돌아가는 길, 아까와는 달리 쇼핑을 즐기는 사람들로 골목이 북적북적하다. 하지만 쇼윈도를 둘러볼 여유가 없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 '메종 데 깐디도(Meson de Candido)'를 향해 걷고 또 걸었다.

입구에 적힌 글자가 미리 안내받은 가게 이름과 달라서 조금 의아했다. 뭐 현지인 친구가 안내해준 곳이니, 잘못 찾아온 건 아니겠지... '꽃보다 할배'에도 등장한 메종 데 깐디도는 세고비아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이다. 1898년에 문을 열었으니, 이 곳에 자리 잡은 지도 거의 120년이 다 되어간다.

잘 익은(?) 아기돼지 2마리가 거리를 지나는 손님에게 유혹의 눈길을 보낸다. 코치니요란 대개 생후 2개월 전후의 돼지를 요리한 것이다. 돼지의 나이도 너무 어리고, 살아생전의 모습 그대로 요리한 것이라 조금은 섬뜩한 느낌이 든다. 아기돼지라 양이 얼마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래 봬도 한 마리가 약 7~8인분 정도 된다.

식당 안에는 다양한 사람의 사진과 인증서 비슷한 것이 걸려 있다. 사진 속 인물들은 스페인에서 꽤 유명한 사람들인 것 같다. 혹시나 해서 꽃할배의 사진은 없나 두리번 거렸지만, 역시나 찾을 수가 없었다.

8시가 거의 다 된 시간이었음에도, 식당은 한산하다. '여기가 정말 맛집이 맞는 걸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저 멀리, 한국에서 돼지구이를 먹으러 여기까지 왔다고 하니, 맘씨 좋은 지배인께서 주방이나 한 번 구경해보는 건 어떻겠냐며, 우리를 2층으로 데리고 갔다.

프라이팬, 접시 등 조리기구가 잔뜩 쌓인 주방의 모습은 여느 식당과 그리 다르지 않다. 2마리를 돼지를 제외하면, 사실 돼지머리는 한국에서도 종종 볼 수 있지만, 머리끝부터 꼬리 끝까지 적나라한 돼지 형체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아기돼지 통구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돼지를 꼬챙이에 꽂아 불 위에서 돌려가며 굽는 것일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피자를 굽 듯 화덕에서 구워낸다. 뜨거운 화덕에서 갓 나온 코치니요의 모습인데, 눈가에 눈물을 흘리는 것 같은 표정이 아직도 눈 앞에 아른거린다..

조금은 충격적이었던 주방 구경을 마친 후, 자리로 돌아왔다. 앞서 이야기했듯, 아기돼지 한 마리는 대충 8인분 정도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테이블이 8명 기준으로 세팅되어 있다. 8인분 이상 주문 시에는 돼지를 통째로 테이블 앞에 가져와서 직접 잘라 서빙을 해준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인원이 적어서, 샐러드와 코치니요 2인분, 그리고 디저트를 주문했다.


세고비아의 코치니요라고 하면, 접시로 고기를 자른 후, 바닥에 접시를 내던지는 장면을 떠올린다. 꽃보다 할배에 나왔던 바로 그 장면 말이다. 하지만 이는 그리 흔한 광경이 아니다. 접시를 던지는 것은 나쁜 운을 쫓아내기 위한 의식인데, 큰 행사가 있는 경우에만 그런 의식을 진행한다고 한다. 실제로 이 곳에서도 몇몇 테이블에서는 아기돼지 한 마리 전체를 주문했는데, 그냥 테이블 앞에서 고기를 자른 후, 접시는 고이 주방으로 가져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코치니요의 모습. 여행을 떠나기 전, 각종 블로그, 카페 후기에 등장했던 '바삭하고 부드러운 맛'이 무엇인지 드디어 알게 되었다. 껍질은 불에 바싹 구워 바삭하고, 속살은 마치 훈제치킨 다리 부분처럼 부드럽다. 껍질 부분은 왠지 모르게 익숙하다. 약간 돼지 껍데기 같은데, 두께는 더 얇고 맛은 더 고소하다.

고기가 입에 들어가니, 저절로 술 생각이 난다. 다들 술을 그리 잘 마시는 편이 아니었기에, 바구니에 담긴 와인병은 사진으로만 남기고, 와인 3잔을 주문했다. 상그리아를 주문할까 잠시 고민도 했지만, 코치니요는 기름기가 많아서 와인과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레스토랑 내부는 고풍스러운 느낌의 그림이 잔뜩 그려져 있다. 얼핏 보면, 유명화가의 예술작품 같기도 한데, 그림 안에는 반드시 코치니요 요리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림 앞 선반에는 역시나 이 곳을 방문했던 사람들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중간중간 보이는 흑백 사진들은 이 곳이 얼마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지를 보여준다.

천장 기둥에 걸려 있는 접시 중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얼핏 보기에는 전형적인 스페인 어느 가문의 문양 같아 보이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기 돼지의 모습이 보인다. 저 문양을 디자인한 사람의 센스에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건 디저트로 주문한 '폰체 세고비아노(Ponce segoviano)'다. 달달하고 촉촉한 빵 사이에 크림이 들어가 있는 이 지역의 대표 디저트다. 다들 '세고비아=코치니요'만 달달 외우지 말고, 폰체 세고비아노도 기억해 두길 바란다. 굳이 여기 오지 않아도 길가에 있는 제과점에서도 쉽게 맛볼 수 있으니, 기회가 되면 도전하시길...


코치니요 2인분, 샐러드, 폰체 세고비아노, 그리고 와인 3잔까지, 가격은 대충 70유로 정도였다. 주의할 것은 우리와 달리, 이 곳에서는 식전 빵도 계산을 해야 한다는 것. 빵 하나에 1.5유로이니, 혹시라도 빵을 먹지 않았다면 웨이터에게 계산서에서 빼 달라고 이야기 하자!

코치니요 요리로 기분 좋게 저녁식사까지 마친 저녁 9시쯤, 수도교 옆 아소게호 광장은 낮 보다 더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역시, 스페인은 낮져밤이의 나라다. 근처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맥주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세고비아 일정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우리는 마드리드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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