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 등 위에서 내려다 본 사하라 사막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기, 그 서른한 번째 이야기
눈앞으로 황량한 모래밭이 펼쳐져 있다. 여기서부터가 사막이라고 가이드가 넌지시 내게 말을 건넨다. 드문드문 푸른 잎의 나무가 자라는 모습이 그동안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사막과는 조금 달랐지만, 아무렴 어떨까? 이곳이 바로 사막이라는데,
벌써 몇 달전, 아니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으로부터 일 년도 훨씬 더 된 그 때, 모로코 여행을 처음 계획했던 그 순간부터 꿈에 그리던 일이 눈앞에 현실로 벌어지기 직전이다. 사막을 걷는 여행자라니,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순간까지도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다들 각자 알아서 화장실을 다녀오고 짐을 챙긴 후, 사막을 함께 누빌 낙타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하라 사막의 주차장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 곳에서는수십 마리의 낙타가 다소곳이 앉아 우리의 간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백마탄 왕자는 아니지만, 백낙타는 한 번 타보고 싶다. "이 녀석! 오늘 하루, 잘 부탁한다!"
드디어 난생 처음으로 낙타를 타는 순간,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바닥에 딱 붙어앉은 낙타 등에 오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작 위험한 순간은 나를 태운 낙타가 일어날 때다. 배에 스프링이 붙어있나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솟구치는데, 이 때 중심을 잘못 잡으면 '골로 가겠구나' 싶었다. 쇠로 된 T자형 손잡이를 꼬~옥 붙잡고, 최대한 몸을 앞으로 기울여야 한다.
모두들 무사히 낙타에 탑승한 후, 드디어 시작된 사막여행. 가이드가 맨 앞에 서서 줄줄이 비엔나처럼 줄로 엮인 낙타 무리를 끌고 사막 속 야영지도 안내해 주는 방식이다. 보기에는 별거 아닌 것 같아보여도 낙타 등 위에 앉으면 은근 긴장이 된다. 일단 낙타 등이 꽤 높은데다, 낙타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가 없어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앞,뒤 낙타의 간격이 좁고 뒤따라오는 낙타가 유독 내 엉덩이에 관심이 많은 눈치라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다. 물론, 한 10분 정도 지나면 금새 적응이 되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 말고도 사막으로 들어가는 여행객들이 몇 팀 정도 더 있었다.이 때만 해도 나중에 도착해서 만나겠거니 했는데, 그냥 이렇게 스쳐지나가면 그걸로 끝이다. 아마 사하라 사막 안에 야영지가 여러 개 마련되어 있나보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 그리고 그 곳을 누비는 베르베르인의 위엄.jpg낙타를 타고 가는 우리 일행과 달리 베르베르인 가이드는 모래바람을 맞으며 홀로 터벅터벅 사막을 가로질러 간다. 아마도 오늘 목적지로 가는 최단 거리를 걸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반면 우리는 모래능선(사구)을 따라 빙~ 둘러서 길을 걷는다. 워낙 모래가 고와서 낙타도 발이 쑥쑥 빠지는데, 경사가 지나치게 높은 곳을 오르다보면 자칫 낙타가 쓰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마리라도 쓰러지면, 그 뒤로 줄줄이 사탕처럼 고꾸라질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둘러가더라도 안전한 경로를 따라 이동해야 한다.
사막투어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장쯤 가지고 있음직한 사진, 바로 모래 위에 비친 그림자 모습이다. 분명히 낙타 위에서 미친듯이 셔터를 눌러댔는데, 딱히 마음에 드는 그림자 사진이 없다. 초반에 찍은 사진은 죄다 흔들렸고, 적응이 된 다음에는 귀찮아서 사진을 많이 찍지 않았던 것 같다. 여행을 마치고 나서 매번 다짐하는 거지만, 아무리 귀찮아도 사진은 최대한 많이 찍어두자!
출발한 지, 한 시간 반쯤 지났을까? 우리를 태운 낙타 행렬이 사막 한가운데에서 멈춰 섰다. 어느덧 모래 언덕으로 해가 넘어가는 순간, 일몰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사막에서의 일몰이라... 얼마 전까지는 상상조차 못 했던 장면이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순간들을 경험할수록 우리는 여행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게 된다.
여기까지 왔는데, 사진은 한 장 박아둬야지! 나는 일몰을 배경으로 찍는 사진이 참 좋다.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얼굴이 안보여서 너무 좋다!
우리가 정신없이 사진을 찍는 동안, 낙타들은 모래밭에 배를 깔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낙타는 말과 달리 무릎을 0도(?)까지 굽힐 수 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다소곳이 앉아있는 모습이 정말 귀엽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흐뭇해지면서 아빠 미소가 입에 걸린달까? 처음에 사막투어를 시작할때는 '낙타 눈썹을 모조리 뽑아다가 한국에 와서 팔아야지!' 했는데, 사슴같은 눈망울을 보면 그런 나쁜 생각이 싹! 사라진다.
그나저나,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낙타 눈썹을 한 번 만져라도 볼 걸 싶다.
해가 지는 것을 보고 다시 낙타에 올랐다. 분명히 해가 모래언덕 너머로 지는 것을 봤는데, 아직도 주변이 환해서 조금 의아했다. '뭐, 조금 있으면 어두워지겠지.'라고 생각하며 20여 분 정도 이동한 뒤에야 사막에서의 하룻밤을 보낼 숙영지에 도착했다.
군대에 있을 때 썼던 A 텐트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숙소가 훌륭해서 깜짝 놀랐다. 모래밖에 없는 사막에 어쩜 저렇게 단단하게 텐트를 고정시켰는지, 다시 봐도 놀랍다. 저런 텐트가 원을 그리며 6~7개 정도 설치되어 있고, 각 텐트마다 침대가 4~5개씩 들어가 있다. 물과 음식도 충분히 쌓여있어서, 이건 사막이라기보다 그냥 작은 마을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우리 일행들이 각자 텐트와 침대를 고르고 짐을 푸는 동안 우리를 이곳으로 안내했던 스텝들이 분주히 움직이더니 어느새 이렇게 훌륭한 저녁을 내어 놓는다. 왼쪽으로 보이는 저 빵은 그냥 밀가루 덩이일 뿐인데 묘하게 끌리는 마법의 음식이다. 마치 군대에서 먹는 건빵 같은 느낌이랄까?
모로코의 식사 메뉴에 따진과 쿠스쿠스가 빠질 수가 없다. 푹 익은 야채와 고기에 긴 여행에 배가 고파서였을까? 아니면 사막의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이 날따라 저녁이 유난히도 맛있었다.
우리가 저녁을 먹는 동안 스텝들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베르베르족 전통 타악기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데 여행 전 블로그에서 봤던 것만큼 신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왠지 모르게 저들의 모습이 어색해 보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메르주가에서 보고 느낀 사막은 그동안 내가 꿈꿔왔던 그것과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오후 늦은 시각에 물을 충분히 챙겨서 출발했기 때문에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갈증을 느끼지도 않았고, 주변은 모래밖에 없어 방향을 가늠할 순 없었지만 이곳 지리에 밝은 가이드 탓에 막막하진 않았다. 어느 정도 불편함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었지만, 짜여진 계획대로 물 흐르듯 일정이 진행되었다. 물론, 불미스러운 사건때문에 고생하는 것보다야 낫다고 볼 수도 있지만, 뭐랄까... 전체적으로 인위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마 초창기에는 외지에서 온 여행자들과 이 곳 주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호흡하면서 좋은 추억을 만들지 않았을까?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들이 사막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하나의 '관광상품'으로 만들기 시작했을 것이다. 마을에서 가까운 사막 어딘가에 텐트를 치고, 동네 사람들에게 영어와 노래를 가르쳤던 사람들이 많은 돈을 버는 것을 목격하면서, 그 뒤로 비슷한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 그들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발전시켜 나갈수록 마을은 여행지로서의 매력을 잃어간다. 블로그를 보고, 여행사를 통해 오는 이른바 '패키지 관광객'이야 많아지겠지만, 사람과 문화를 쫓는 여행자들은 다른 어딘가를 찾아 발걸음을 돌린다. 내가 보기에 메르주가는 더 이상 '진짜 사막'을 볼 수 있는 곳은 아닌 것 같다.
무수히 빛나는 밤하늘의 별도, 어슴푸레라는 단어가 무척이나 잘 어울렸던 사막의 새벽 하늘도 내게 잊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선사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막여행이라는 버킷 리스트의 항목을 지우는 순간 왠지 찝찝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척박하고 아름다운 사막과 하나가 되러와서 구경만 하고 돌아선 것이 사뭇 아쉬워서가 아니었을까?
블로그를 방문하시면,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기를 비롯하여 더 많은 콘텐츠를 접하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