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양만큼이나 파란 하늘을 품은 도시, 에사우이라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기, 그 서른두 번째 이야기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낸 사막에서의 하룻밤을 뒤로하고, 마라케시로 돌아가는 차에 올랐다. 장장 열 두세 시간에 달하는 기나긴 여정이다. 사실 마라케시에서 메르주가까지, 그 멀고 먼길을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은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많은 여행자들이 메르주가에서 페즈로 넘어가곤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택시기사와의 흥정이 필수다. 참고로 페즈까지는 차로 8시간 정도 소요되며, 가격은 1,000~1,500 디르함(12만 원~18만 원) 정도(2015년 기준)였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 일행 중에 유일하게 페즈로 넘어가는 타츠야가 택시 기사에게로 다가가 이야기를 나눈다. 한참이 지나서야 밴으로 돌아와 짐을 챙겨 가는데, 표정이 그리 좋지 않다. 서너 명이 함쎄 이동하면 개인 부담이 확 줄어드는데, 택시 기사 말로는 지금 페즈로 가는 사람이 없어서 타츠야가 1,000 디르함이 넘는 금액을 혼자 내야 한단다. 여간 부담스러운 금액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여행을 포기할 수도 없는 법. 타츠야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택시에 올랐다. 그렇게 타츠야를 보낸 후 차에 올라타 아쉬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사막투어는 그렇게 기억 저편, 추억 속으로 넘어갔다.
다음날 아침, 숙소에서 짐을 챙겨 시내로 나왔다. 마라케시에서 차로 약 3시간 거리에 위치한 휴양도시, 에사우이라(Essaouira)로 떠나기 위해서다. 노점과 삐끼, 구걸하는 아이들로 난장판인 메디나 안과 달리, 신시가지는 무척이나 평온했다. 왕복 8차선 도로와 번듯하게 세워진 건물, 무장경찰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쇼핑몰은 '내가 알던 모로코'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마라케시에서 에싸우이라로 가는 버스는 오전에 2대, 오후에 3대, 총 5대가 있다. 요금은 65 디르함(7,800원)인데, 수화물을 싣는 비용은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 무게에 따라 짐 싣는 비용이 달라지는데, 평범한 배낭여행객이라면 5~10 디르함(600~1,200원)이면 짐을 실을 수 있다. 다만, 버스를 타기 전에 미리 터미널 왼쪽 사무실로 가서 무게를 재고 돈을 낸 후, 영수증을 받아야 한다.
* <참고> 마라케시~에싸우이라 버스 시간표(수프라투어, 2015년 3월 기준)
- 마라케시→에싸우이라 : 08:30 / 10:30 / 14:30 / 17:00 / 19:00
- 에싸우이라→마라케시 : 06:00 / 09:30 / 11:45 / 15:15 / 17:00
마라케시를 출발한 지 정확히 3시간 만에 버스는 에사우이라 터미널에 도착했다. 과연 여기가 모로코가 맞나 싶었다. 하지만 감탄도 잠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삐끼들이 나를 에워싼다. 역시, '여기는 모로코다'.
사실, 삐끼라고 하면 안 좋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데, 잘만 이용하면 꽤 많은 도움이 된다. 미로 같은 메디나에서 굳이 힘들여 숙소나 식당을 찾을 필요가 없다. 대신, 시세를 미리 알아두는 것은 필수! 몰려드는 삐끼들에게 오늘 하루 잘 곳을 찾는다며 원하는 가격을 제시하니, 자기네들끼리 쑥덕쑥덕하다가 숙소로 곧장 안내해 준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아틀란틱 호스텔, 나름 가격(120 디르함, 14,400원)도 그렇고 시설도 만족스러웠다. 에사우이라를 여행하는 분들을 위해 위치를 공유하고 싶지만, 구글맵을 찾아보니 이미 폐업한 곳으로 나온다. 뭐 위치를 알려줘도 찾기가 어려웠을 테니, 그냥 터미널 가서 삐끼에게 하루의 운을 맡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방에 짐을 던져둔 후, 가장 먼저 호스텔 옥상으로 올라갔다. 칙칙하고 재미없게 생긴 건물들과 바다를 닮은 푸른 하늘이 분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멀리서 바다 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에싸우이라의 메디나는 마라케시의 그것과는 또 다르다. 뭐랄까, 길이 직선으로 쭉쭉 뻗어있고, 덜 복잡하다고나 할까? 그러고 보니 길도 비교적 넓은 편이다. 에사우이라는 18세기 중엽에 건설된 도시로 북아프리카의 다른 도시에 비해 그 역사가 비교적 짧은 편이다. 메디나는 프랑스 건축가 코르뉘에 의해 설계되었는데, 그래서인지 도시의 틀이 유럽의 방식과 많이 닮았다고 한다.
이전 포스팅에서 설명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모로코의 메디나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시가지로 적군의 침입에 대비해서 일부러 길을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에사우이라의 메디나는 축을 이루는 2개의 메인 도로를 중심으로 4개의 구역이 명확하게 정비된 것이 특징이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이렇게 탁 트인 공간이 펼쳐진다. 유럽인들의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라 그럴까? 앞에 보이는 건물도 그렇고, 길을 걷는 사람들의 표정에도 묘한 여유가 넘쳐흐른다.
에사우이라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Blue'다. 하늘도 파랗고, 건물 간판도 파랗고, 택시도 파랗다. 심지어 할아버지가 쭈그려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리어카 색깔까지도 온통 파란색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에사우이라에서는 코카콜라마저도 파란색이라는 것! 살다 살다 파란색 코카콜라 앰블럼 보게 될 줄이야. 아마 누군가가 '아프리카 어디쯤에는 코카콜라 메인 컬러가 파란색이야'라고 말했다면 '뻥치고 있네'라고 대꾸했겠지? 그나저나 모든 것이 파란 도시 에사우이라에서 막상 앰블럼을 빨간색으로 칠해 놓으면 그것도 꽤나 어색할 것 같긴 하다.
메디나 안을 정처 없이 떠돌다 발견한 그래피티, 아무리 이슬람 국가라도 벽에 낙서하는 것은 어찌 못하나 보다.
사람들로 가득한 카페 야외 공간에는 작은 나무상자를 들고 다니며 구두를 닦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정성껏 구두를 닦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마라케시 버스 터미널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본 것 같다. 담배를 물고 테라스에 다리를 꼬고 앉은 유럽 신사의 구두를 정성껏 닦는 모로코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사진을 찍는 것조차 죄스러울 정도로 마음이 불편했는데,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또 뭐 크게 문제가 있나 싶기도 하다. 저렇게 구두를 닦는 손님이 있어야 저 아이도, 마라케시의 할아버지도 돈을 벌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으니, 어찌 보면 손님이 그들에게는 고마운 존재일 것이다. 단지 보기에 불편해 보인다는 이유로 사진 속 백발의 아저씨와 아침에 보았던 유럽 신사를 나쁘다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강자와 약자, 선과 악이라는 프레임을 미리 만들어 놓고 그 속에 현상을 끼워 맞추는 것은 아닐까? 유럽인은 약탈자, 아프리카 현지인은 피해자라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유럽인들이 모로코의 시장에서 가격으로 차별받고 있지 않은가? 뭐 괜히 분위기가 심각해졌는데, 아무튼 저 때 저 장면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심각한 분위기 따위, 한 번에 날려버릴 만한 장면이다. 8등신, 아니 10등신은 족히 되어 보이는 미녀가 성벽에 기대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마 유명한 패션잡지 표지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닐까? 모로코는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지만, 지금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부문에 걸쳐 프랑스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곳, 에사우이라는 프랑스인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 중 하나고, 프랑스 모델들의 화보 촬영지로도 인기가 높다고 한다. 결론은 프랑스 10등신 모델 만만세!
입을 헤벌쭉 벌리고 화보 촬영을 구경하느라 침을 한 바가지쯤 쏟아서인지 목이 마르기 시작했다. 해안가 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오렌지주스를 파는 노점이 줄지어 있다.. 순도 100%의 오렌지주스가 단돈 5 디르함(600원). 천원도 안 되는 돈으로 수분과 비타민을 가득 채울 수 있다니! 단언컨대, 오렌지 주스야 말로 모로코 여행의 비타민이다.
이 정도면 시내는 대충 둘러본 것 같으니 이제는 해변으로 나가야 할 시간이다. 아프리카에서 바라보는 대서양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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