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나뭇가지 끝에 검은 비닐봉지가 걸려있었다. 누가 버린 쓰레기인지, 어디서 날아와서 저기에 걸린 건지, 답잖게 환경오염에 대해 걱정하며 올려다보는데, 자세히 보니 비닐봉지가 아니라 까마귀 사체였다.
출근하고 짬 내어 회사 밖으로 나와 애인과 통화를 할 때 그녀가 '어디서 까마귀가 우네?' 할 때 그 까마귀인 듯싶었다.
아니, 그녀가 얘기할 때 나는 분명 그 까마귀를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그건 한쪽 날개를 펼친 채로 나뭇가지에 걸려선 고개를 아래로 축 늘어뜨린 채였다.
어째서 저기 높은 곳에 걸려 죽어 있을까. 다른 놈들은 쉬었다 가는 곳인데 왜 저 혼자 죽어 있나. 날아오다 마침 앉았다가 죽었을까. 아니면 누가 버린 비닐봉지처럼 떠돌다 걸려버린 것일까.
지쳐서 죽은 것일까. 때가 돼서 죽은 것일까.
나는 전화기 너머로 재잘대는 여자의 말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까마귀의 부리가 오전 햇살에 걸려 반짝인다. 겉옷 사이로 파고드는 차가운 바람에 옷을 여미며 나는 까마귀가 추워 보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죽은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전화기 너머로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뭔가 잔뜩 상기된 목소리였다.
누군가는 밤새 죽어있던 에너지를 하나라도 더 끌어 모아 하루를 시작하려는 이 시간에 여자는 이미 저녁 7시의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
이 여자의 시간은 나와는 다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와 그녀의 시곗바늘이 11:31을 가리키고 있어도, 우리가 사는 시간은 다르다. 나는 빠르고, 그녀는 느리다. 어쩌면 내가 느리고 그녀가 빠를지도 모른다. 속도를 맞추기란 어렵다. 서로의 시간이 어디로, 얼마만큼 흐르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한쪽은 미래에, 다른 한쪽은 과거에. 아니면 그 반대, 그러다 가끔 현재에 만난다.
너는 내가 나무에 걸려 죽어있으면 어떨 거 같아?
뭐라고?
여자의 황당해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다.
아니야.
여자는 잠시 침묵하더니, 내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이어한다. 오늘의 그녀는 어느 시간에 있는 걸까. 같은 오늘이기는 할까.
나는 한참을 생기가 머물러 있는 까마귀의 부리를 보고 있었다.
다음날, 회사 앞 그 나무 위에 까마귀 사체는 사라져 있었다.
땅에 떨어져 들개가 물어간 것도, 누군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치운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