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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빛 Dec 24. 2020

엄마 아빠, 메리 크리스마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산타 할아버지, 산타 할머니께

크리스마스이브.

예전 같으면 여행을 갔거나, 친정집에 내려갔거나, 쇼핑몰 같은 데서 크리스마스를 핑계 삼아 잔뜩 사 먹고 쇼핑하고 있었을 텐데.

올해는 집에서 조용한 연휴를 보내는 중이다.

그래도 아이는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집에서라도 홈파티를 해야겠기에, 일찍 장을 보고 아이가 잠깐 잠이 들었을 때 선물을 부랴부랴 포장하기 시작했다.


내 아이는 올해 초등학교 1학년, 8세이다.

사실 아이도 참 짠했다. 코로나가 이제 막 시작이던 2월 말, 유치원 졸업식을 급하게 취소해서 유치원 마당에서 아쉽게 졸업사진을 찍어줄 때만 해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싶었다. 그러나 내 아이는 올해 초등학교 입학식도 못했다. 입학식에 입는다고 할머니가 선물한 예쁜 튤립 무늬 원피스도 한 번도 못 입고 옷장에 잠들어 있다.

반 친구들 얼굴과 선생님 얼굴도 반쪽만 보아야 했기에 아직도 길에서 마주치면 반 친구임에도 누가 누군지 못 알아본다.

학교는 올해 40일도 채 가지 못했다. 오늘은 아침에 ebs수업을 듣다가 문득 내게 말했다.


-  엄마, 올 해는 국어 교과서를 나 혼자 그냥 공부한 것 같아. 나 잘했지?


그 말을 듣는데 어찌나 짠하고 미안하던지.

그래서 올 크리스마스는 누구보다 더 잘 챙겨주고 싶었다. 물론 산타의 존재를 아직 철석같이 믿고 있는 녀석이지만.

아이가 갖고 싶어 하던, 자기 키만큼 큰 관절 인형과 lol 서프라이즈 인형의 집을 샀다. 물론 둘 다 비싸서 남편이 좀 난감하다는 표시를 했지만 올해만큼은 잘 챙겨주고 싶었다.

미안해서. 그럼에도 코로나 시대를 잘 버텨줘서 고맙다는 의미였다. 아, 물론 산타할아버지가 주시는 거지만. 그래서 고맙다는 말은 못 듣겠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언젠가 아이가 내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 엄마, 우리 반에 누가 그러던데 사실 크리스마스날 선물을 주는 건 산타할아버지가 아니라 엄마 아빠래. 진짜야? 그럼 산타할아버지는 없는 거야?

- 아니야, 누가 그래? 산타할아버지가 주시는 거야. 산타는 진짜 있어. 네가 착한 일 많이 하면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주셔.

- 그렇지?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면 정말 슬플 것 같아. 그래도 아니라니까 다행이야!


언젠가는 산타할아버지는 세상에 없고, 사실은 부모님이 나의 산타할아버지이며 산타할머니였음을 알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진실을 마주할 날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었다. 아이의 기쁨과 기다림을 시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언제까지, 아주 오래오래 산타를 믿어주기를 바랐다.

어른이 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포장을 하려니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아, 내 아버지도, 내 어머니도 이런 감정으로 내 선물을 준비하고 포장하셨겠구나.




나는 어릴 때 사실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몇 번 받지 못했다. 그땐 내가 착한 일을 많이 하지 못한 아이라서 나에게만 선물을 안 주시는구나 생각했다.

다른 친구들이 산타에게 선물을 받은 걸 보면 너무 부럽고 착하지 못했던 내가 속상했다.

내 기억 속 나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단 세 번이었는데, 12색 크레파스와 과자 한 봉지, 양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알았다.

내가 착한 일을 못한 나쁜 아이라서 선물을 못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의 엄마 아빠는 선물을 살 정도로 넉넉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엄마와 아빠의 마음속에는 미안함에 피눈물이 났었다는 것을.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

엄마 아빠는 부산에 사시는데, 5인 이상 집합 금지에다, 거주지가 다르기 때문에 만날 수도 없다. 코로나 때문에 추석 때도 내려가지 못했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다.


-  아빠, 뭐해?

-  그냥 있어. 잘 지내고 있어? 서울에는 코로나가 그렇게 심하다던데.

-  그래도 우리 가족은 다 괜찮아 아빠. 아빠도 마스크 잘 끼고 다녀.

-  크리스마스인데 애 선물은 샀냐? 뭐 샀어?


아빠가 즐거운 목소리로 아이의 장난감을 물어보셨다.

아빠는 손녀바보. 우리가 내려갈 때마다 아이 손을 잡고 마트에 가서 선물을 잔뜩 사주신다.


-  그냥, 올해는 인형이 갖고 싶다고 해서 인형으로 골랐어.

-  그래? 아이고 내가 가까이 살았으면 애 선물 하나 사주는 건데..........

-  아빠는 맨날 애 장난감만 사주고. 비싼데 이제 그만 사줘도 돼. 뭘 맨날 그렇게 사줘?

-  내가.. 너희 어릴 때 크리스마스에 선물 하나를 제대로 못해줘 가지고... 그게 너무 한이 돼서... 손녀한테라도 많이 사주고 싶어서.......


아빠가 말 끝을 흐렸다.

서로 3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  무슨 그런 소리를 해. 그땐 다들 그렇게 어려웠지 뭐. 그리고 그땐 요즘처럼 누가 크리스마스를 챙기고 그랬어. 요즘에나 그렇지.


나는 씩씩하게 대답했지만 마음 한 켠에는 아빠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사르르 밀려왔다.

내가 지금 나이가 몇인데. 어른이 된 지 한참 되었는데도 아빠 엄마는 나의 어린 시절, 그때의 크리스마스에 마음이 머물러 계시다니.


-  너도 보고 싶고, 이서방도 보고 싶고, 손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지만 이렇게 목소리를 들었으니 됐구나. 건강 잘 챙기렴.

-  알았어. 아빠 밥 잘 챙겨 드셔.


전화는 끊었지만 마음은 끊지 못했다. 아마 아빠도 같은 마음 이리라.




근데 아빠, 그거 알아?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나의 산타할아버지, 산타할머니인 두 분 께서 늘 베풀어주신 사랑으로 내가 이렇게 잘 자랐다는 걸.

옆집 아이의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보다 퇴근길에 아빠가 품에 안고 오던 천 원짜리 붕어빵 한 봉지가 내겐 훨씬 행복했다는 걸.

나의 산타할아버지, 산타할머니인 당신들이 있어서 내 평생이 따뜻하다는 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내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세요, 아빠 엄마.

내가 원하는 선물은 당신들이 오래오래 제 곁에, 손녀 곁에 있어주는 거예요.

이렇게 보고 싶으면 전화를 걸고, 만나러 갈 수 있도록 오래오래 부디 제 곁에 있어 주세요.


크리스마스가 되면 부모님이 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다니 나도 이제 늙었나 보다, 싶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생각이 싫지 않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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