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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빛 Jan 07. 2021

난 겨울이 싫어

왜 즐거움보다 불편함이 먼저 떠오르는 걸까


오후가 되자 그 맑던 하늘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더니, 눈보라를 토해내듯 쏟아내기 시작했다. 눈은 순식간에 쌓였고,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은 눈사람으로 변해있었다.


겨울을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난 겨울이 좋았다. 코끝이 찡하면서도 왠지 모를 그 상쾌한 찬 바람이 좋았고, 발을 동동 굴려가며 친구들과 먹던 그 따뜻한 어묵 국물이 좋았고, 지갑에 현금을 잘 가지고 다니지 않는 내가 늘 2천 원을 품고 다니게 한 붕어빵 카트가 좋았고, 펑펑 내리는 눈을 보며 마시는 따뜻한 핫초코 한 잔의 여유가 좋았고, 무엇보다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품어 낭만과 희망, 설렘을 가득 안겨주는 이 겨울이 좋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가 나는 겨울이 싫다.


추운 것도 싫고, 옷이 무거워 눈사람처럼 뒤뚱거리며 걷는 게 싫고, 겨울에 유독 심한 미세먼지도 싫고, 한파에 동사했거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를 보는 것도 싫다. 그리고 눈이 오는 것도 이제는 싫어졌다.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고, 저 눈이 녹으면 또 얼마나 길이 더러워질까 싶고, 눈을 밟으면 뽀드득 거리는 소리는 좋지만 집에 오면 그 탓에 현관에 물이 흥건해지는 것도 싫다. 아이와 눈 놀이를 나가면 아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에 나도 힐링되지만, 빠르게 쌓여가는, 눈에 흠뻑 젖어 세탁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는 것도 싫다. 연말과 새해가 오면 “잘 살아냈다”, “올 한 해도 잘 해보자”라는 생각도 물론 들지만, 더 잘 살아내지 못한 아쉬움과 후회, 또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느끼는 알 수없는 두려움도 싫다.

새해 첫 날, 떡국과 나이를 함께 삼키며 느끼는 어른이라는 무게, 엄마라는 무게도 가끔은 버겁다. 너무 무겁다. 그냥 아무생각없이 가끔 망나니처럼(?) 다 던져버리고 살고 싶기도 하다. 실천은 안되지만.


거실에서 바깥을 내려다보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눈이 많이 온다고 강아지처럼 다들 뛰어다녔다.

눈사람도 예쁘게 만들고, 행복하다며 눈사람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그걸 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서글퍼졌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던 것 같은데.

눈 오는 것 하나만으로도 행복을 느꼈던 것 같은데.

나는 왜 겨울이 싫어진 걸까.

왜 겨울이 주는 즐거움보다 불편함이 이제 먼저 떠오르는 걸까.


내 안의 낭만은 다 어디로 녹아 없어진 걸까.


겨울을 싫어하는 내가 겨울만큼이나 건조하고 추워진 마음을 갖게 되다니,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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