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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빛 Mar 23. 2021

'아줌마'의 의미


학교를 매일 등교하는 건 아이인데, 왜 내가 몸살이 났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아이는 정규수업뿐 아니라 방과 후 수업도 하고 싶어 해서 아이도 나도 눈코 뜰 새가 없다.


그날도 아이를 영어학원에 픽업을 시켰다.

집에 가려다가 너무 피곤해서 학원 옆에 있는 카페에 잠깐 들어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벤티 사이즈로 시키고 기다리고 있는데, 내 앞에 줄을 선 두 아가씨의 대화가 귀를 찔렀다.


그 날은 모 카페에서 새 엠디가 출시된 날이었나 보다.

그중 한 아가씨는 아침에 있었던 일을 옆 친구에게 종알종알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니 내가 아침에 엠디를 사려고 들어갔거든?

그런데 물건이 다 나가고 없는 거야. 그래서 그냥 나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어떤 아. 줌. 마가 와서 점원에게 물건 더 꺼내 달라면서, 물건 있는 거 다 안다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생떼를 쓰는 거야.

그래서 그 점원이 진짜 물건을 더 꺼내서 진열해주는 거 있지. 그래서 나도 덕분에 컵을 하나 샀어.

근데 그 아줌마 진짜 웃기지 않아? 없으면 그냥 가면 되지. 굳이 꺼내 달라고....

아줌마들은 왜 그렇게 다 진상인지 모르겠어. 아줌마 충인가? 하하하하하하."



아줌마충???????????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심지어 나는 이어폰을 끼고 있었는데도 대화하는 소리가 다 들렸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내가 아줌마인 것이 괜히 찔렸고, 따라서 내가 벌레의 호칭이 되는 것이 불쾌했다.

또 하나는 그들이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혐오"가 나의 사고방식에도 옮을까 봐, 그래서였다.

나는 커피만큼 씁쓸한 기분을 들이켜면서, 매장을 나왔다.






맘충, 노인충, 개저씨, 한남, 아줌마충................

요즘 인터넷과 사회 곳곳에는 타인을 비하하는 말들이 쏟아지는데, 나는 그게 불편하다.

왜 "사람"에게 벌레 취급을 하는가.


물론 나도 그 "아줌마"가 점원에게 정중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눈살이 찌푸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포인트는 그 "아줌마"가 문제였다는 것이다.

왜 "그 사람" 이 이상한 걸 아줌마를 싸잡아서 매도하는가.

이상한 아가씨도 많고 이상한 청년들도 많다.

이상한 남자도 많고 이상한 여자도 많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그 사람의 문제일 뿐.

그냥 그 사람의 문제를 모두에게 뒤집어 씌우는 건, 글쎄. 나머지 이들에겐 너무 억울한 일 아닐까.


"아줌마"의 사전적 정의는 부모와 항렬이 같은 여성을 가리키는  "아주머니"를 낮추어 부르는 일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억세고 예의 없는 중년 여성"을 가리키는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진 게 사실이다.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분노하며 쏟아내는 그 말들이 따갑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성폭행 사건이라든가, 사회 이슈가 있는 기사의 댓글들을 보면 어김없이 남녀가 편을 나눠 싸운다.

언젠가는 관련 기사에 "남자들은 잠재적 성폭행 예정자"라는 쓴 댓글을 읽고 충격에 빠진 적도 있었다.

모든 남자들이 성폭행을 하는 것도 아닌데, 서로를 물어뜯고 싸우고, 남을 비하하는 모습들이 안타깝다 못해 슬프다.

유연하게 사고하면 되는데, 무조건 모 아니면 도, 흑 아니면 백이라고 생각하는 게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렇게 쏟아내는 말들로 얻는 게 도대체 뭔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누군가는 한심하게 생각한다는 "생각"은 해 보질 않는 건지.


내가 살아가면서 믿는 몇 안 되는 진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내가 말한 것들은 다 부메랑이 되어 내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은 행동만큼이나 신중해야 한다.

그것이 나의 거울이고, 나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일이며, 나의 성격과 수준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 역시 완벽한 인간이 아니며, 기복이 워낙 심한 사람이기에, 하루에도 몇 번씩 이게 옳은 건지 생각하면서 말하고 행동한다.

적어도 그런 "눈살이 찌푸려지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기에.

유연한 사고를 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아름답던 그 아가씨,

나중에 시간이 흘러 아줌마가 된다면

그리고 아가씨 앞에서 누가 그런 말을 한다면

그때도 그렇게 깔깔거리고 웃을 수 있을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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