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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빛 Jul 22. 2021

이번 올림픽은 시청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것도 사랑이라서


징크스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에서 마술(魔術)에 쓰던 딱따구리의 일종인 개미잡이라는 새 이름에서 유래했다. 본디 불길한 징후를 뜻하지만 일반적으로 선악을 불문하고 불길한 대상이 되는 사물 또는 현상이나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적인 일 등을 말한다.


모든 일은 의미가 있겠지만, 나는 어떤 경쟁이나 그와 비슷한 결의 일에 큰 의미를 갖는 편이다. 원래는 그런 것 없이 둥글둥글한 편이었지만, 이상하게 내가 어떤 경기를 보거나 응원을 하면 꼭 그 팀이 지곤 했다. 그래서 학창 시절 친구들은 체육시간이나 운동회 때 나와 같은 편이 되는 것을 꺼려(?)했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세상 행복한 얼굴로 응원을 했다. 그러다 보니 경기 결과와 관람에 대한 집착이 생기고, 의미를 갖게 되었다.


아, 내 응원의 끝은 늘 팀의 패배. 그래서 학창 시절 나의 별명은 '똥 손', '똥촉', '쟤와 반대로 하면 무조건 이긴다' 등등이었다. (아마 지금 학교를 다녔다면 별명이 타노스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중학교 때는 내리 3년 동안 운동회 때 우리 편이 졌다.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정말 내가 응원을 해서 진 건지, 그 이후로 나는 경쟁이나 스포츠 결과에 쓸데없는(?) 의미를 두기 시작했다. 그것이 나의 징크스가 아님을 증명하고 싶었기도 하고, 징크스가 맞다면 깨고 싶었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도 그것은 깨지지도, 증명되지도 못했다.


중학교 때, 나는 롯데 자이언츠의 야구에 푹 빠져있었다. 용돈을 모아서 친구들과 야구장에 가서 머리에 비닐봉지를 쓰고 열심히 응원을 했다. 그런데 꼭 내가 관람하러 가는 날은 어김없이 롯데가 경기에서 패배했다. 1,2등을 다투는 성적임에도 그랬다. 세 번째 관람 날, 8-0으로 진 롯데를 보고 펑펑 울면서 나는 다시는 야구를 관람하러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게 내가 롯데를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 해 롯데는 준우승을 해냈다. 역시 내가 관람을 하지 않은 덕분이라며, 스스로 뿌듯해하며 기뻐하던 나였다.




내일은 일본에서 열리는 올림픽 개막일이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대한민국과 뉴질랜드의 축구 예선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폭염에 코로나까지 겹친 이 상황에 연습한다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선수들이 짠했다. 누구보다 응원을 해주고 싶었다.

전반전부터 우리나라 선수들은 필드를 날아다녔다. 아슬아슬하게 골이 꼭 들어갈 것 같은데 들어가지 않았다. 두 손에 땀이 났다. 나는 남편과 치킨을 먹으며 열심히 우리나라를 응원했다.


아주 오랜 징크스였기에, 망각했다.

아니, 깨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종일 우리나라가 경기를 이끌어 갔는데, 후반전에 아주 어이없게, 오프사이드라는 판정까지 뒤집혀가면서, 뉴질랜드는 선제골을 터뜨렸다.

시간은 점점 흘렀고, 뉴질랜드 선수들은 부상을 핑계로 자꾸 필드에 드러누웠고, 나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또, 내가 봤기 때문일까.

축구에서 우리나라는 1-0으로 패하고 말았다.


“오빠, 내가 경기를 보는 게 아니었어.”


남편은 그저 피식 웃을 뿐이었다.

남편은 뭘 그렇겠냐며, 그냥 진 거라고, 다음 경기는 반드시 이길 테니 별 의미 두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왜인지 선수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그냥 마음으로만 응원을 할 걸 그랬나, 싶고.


그래서 이번 올림픽은 관람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는 뭘 그런 걸 믿느냐며 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폭염에, 코로나에 구슬땀을 흘린 선수들을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응원하고, 포털사이트 뉴스로 결과를 지켜봐야겠다. 아니면 방송은 켜놓고 두 눈은 가린 채 소리만 들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유치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의 한 방법이다. 이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중학교 때의 친구들이 생각난다. 경기를 보면서 나를 떠올린 친구가 혹시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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