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사빛 Jun 06. 2021

캠핑의 이유


어른들의 말씀은 다 맞았다. 어릴 땐 하루가 너무 길더니, 내 나이와 시간의 길이는 반비례했다. 지쳤다.

하루하루를 좀 느리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돌아서면 해가 뜨고, 돌아서면 잘 시간이었던 날들. 하루가 너무 짧은데 그 짧은 하루 중 내가 내 마음대로 쓰는 시간이 과연 몇 분이나 될까.


본디 천성이 게으르고 외출을 할 때는 뭘 챙겨 다니는 것을 귀찮아하는 스타일이라, 캠핑은 나와는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생각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그 많은 짐들을 챙기기도, 집에 돌아와 다시 푸는 일도 쉽지 않다. 짐을 챙기고 풀면서 이걸 왜 했지 하고 현타가 온다.

그런데 나는 또 아무렇지 않게 캠핑을 예약하고 또 짐을 꾸려 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캠핑이 너무 좋다.


주로 파주 쪽으로 캠핑을 가는데, 지난주에는 무려 다섯 시간이나 걸려서 섬진강 쪽으로 캠핑을 떠났다.

섬진강은 강과 산으로 둘러싸여 뷰가 너무 좋고 밤하늘에 별이 유난히 많았다. 우리는 짐을 풀고 뚝딱뚝딱 텐트를 친 다음, 섬진강 얕은 쪽으로 가서 재첩을 잡고 발을 담그고 놀았다. 섬진강은 재첩이 자랄 만큼 물이 깨끗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느끼게 해 주었다. 힐링의 감사함까지 함께.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였다. 출발할 때 서울은 비가 오고 흐렸는데 여기는 햇볕이 꽤 따가웠다. 파라솔을 꽂고 앉아서 강을 바라봤다. 햇볕 때문에 강에 유리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다. 아무도 없었다. 이따금 지나가는 찻소리와 새소리가 캠핑의 전부였다.

더운 날씨 탓에 아이는 강에 발을 참방참방 담그고 뛰어다녔다. 시원하고 자연에서 노니 너무 좋다고 연신 까르르 웃는 아이의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짠했다.


우리는 나비도 잡으러 다니고, 네잎 클로버도 찾으러 다녔다. 별 것 아니지만 또 특별한 것들이었다. 나비를 이렇게 자세히 본 적이, 네잎 클로버를 찾으러 풀밭을 헤집고 다닌 게 언제였던가. 아이와 함께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면서 어린 시절의 자아가 돌아온 기분이었다.



우리는 해가 지는 보랏빛 하늘을 보며 함께 바비큐를 해 먹고, 불멍을 했다. 텐트 입구에 쳐 놓은 반짝이는 색색이 알알 전구가 어느새 깜깜해진 하늘과 참 잘 어울렸다. 음악을 틀어놓고 밤하늘을 바라봤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각자의 표정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엉킨 지난 일주일간의 모든 것들이 풀리고 있음을. 캠핑이 주는 힐링이 어떤 것인지를. 어두운 마음속에 딸깍, 하고 불을 켜주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느린 하루를 보냈다.


캠핑을 하면 하루를 야무지게 쓰는 기분이라 좋다.

하루가 이렇게 길었구나, 시간이 이렇게 느리게 가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집에 있을 때는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 채 밤을 맞이하고, 또 아침을 맞이했는데 숲 속에 있으면 시간과, 자연을 오롯이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머릿속 복잡한 찌꺼기들을 비워낼 수 있어서 좋다.

비가 오면 빗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잠이 들 때, 어디선가 전해지는 풀밭 냄새가 비릿하고 풍성해서 좋다.


오늘 뭐하지? 하고 게으른 고민을 할 수 있어서 좋다.


트렁크에는 짐으로 가득 찼지만 마음속에도 연료를 가득 채운 느낌이다. 캠핑의 이유다. 다가오는 한 주를 또 힘차게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와 추억을 준다는 것.


저마다 가지고 있는 스트레스를 다양한 경험과 추억으로 해소시킬 수 있는 지혜를 주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번 올림픽은 시청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