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주말농장주 입니다만
누구나 나만의 텃밭을 가꿔보고픈 바람을 한 번쯤을 가져봤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일단 코로나 이후의 삶이 많이 변했다. 그리고 가치관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바뀌었다. 마음에 자꾸 쓸데없는 바람이 불었다. 그게 싫어서 잡념을 싹 없애고, 땀을 흘려 생산적인 것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올 해는 매해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텃밭 하나를 분양받았다. 나의 텃밭은 고양시에 있다.
남편은 어릴 때 시골에 살았다며 걱정 말라며 자기를 믿으라고 했다. 그러나 남편의 말들은 곧 뻥이었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되었고,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덜렁덜렁 밭에 갔다가 옷은 금방 다 버렸으며, 텃밭을 가꾸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음을 첫날 절실하게 깨달았다.
나는 우선 텃밭 주변 시장에 가서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사고, 얼굴이 보이지 않는 모자를 사서 장착했다. 바람 솔솔 들어오는 몸빼바지도 필수다.
바로 그거다. 시골 할머니들의 그 룩. 그렇지 않고서는 밭일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왜 그렇게 입고 다니시는지 깨달았다. 모든 건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우선 씨앗과 모종을 심기 전에 땅을 고르고, 돌이나 딱딱한 흙을 잘게 부숴줘야 한다. 땅을 한번 뒤집는 것이다. 그래야 잘 자란단다. 그런데 남편은 그 힘든 일을 무려 10분 만에 끝내곤 집에 가잔다. 살펴보니 하나도 안 되어있다. 내가 노려보니 남편은 말했다.
저런 척박한 땅에서 자라야 강하게 큰다고.
클 놈들은 다 알아서 큰다고.
남편아, 너도 앞으로 척박하게, 강하게 크고 싶냐?
결국 나는 다시 다 땅을 뒤집고 흙을 고르게 만들었다. 다 하고 나니 세 시간이 지나 있었다.
첫날 나눠 준 씨앗과 우리가 따로 준비한 모종을 고르게 심었다. 파, 깻잎, 방울토마토, 상추, 가지, 오이 고추 등을 심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농장을 가서 확인하는데, 상추가 역시 제일 잘 큰다. 벌써 세 번이나 수확해 먹었다. 농약을 치지 않아서 더 신선하고 내가 키운 것들이라 더 맛있다.
근데 복병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잡초였다.
잡초가 너무 많이 자라서 뽑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게 잡초인지 그냥 새싹인지 가늠이 안 되는 점이다. 잡초인데도 잡초가 아닌 것처럼 예쁘게 자라고 있는 것도 많다. 텃밭 관리인이 잡초를 뽑으라고 잔소리하셨는데, 아니 뭘 알아야 뽑죠 아저씨…
잡초의 놀라운 생명력. 뽑아도 또 씩씩하게 자라고 밟아도 아랑곳 않고 일어난다. 다른 식물들처럼 애지중지 하지 않아도 혼자 씩씩하게 큰다. 어떤 건 꽃도 피어있다. 매주 잡초를 뽑는 게 귀찮지만, 잡초가 자라는 모습은 신기하다. 어떻게 보면 텃밭을 가꾸면서 가장 놀라고, 예뻐 보이는 녀석이다. 그 놀라운 생명력과 씩씩함이라니.
그래서 잡초인데도 밉지가 않다. 오히려 쑥쑥 자라는 게 예뻐 보인다. 우리도 마음이 다치고 밟혀도 잡초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일어나 푸르고 씩씩하게 자라고 자라고 또 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예민하지 않고 푸르러서 기특한 녀석들이다. 나도 잡초같이 크고 싶다.
잡초같이 살고 싶다.
비가 자주 와서 심었던 시금치가 다 죽어버렸다. 그래서 땅을 또 뒤집고 깻잎 모종을 그 자리에 심었다. 집에 돌아오면서 뭔가 뿌듯하다. 모두의 자리에 푸르게 자라고 있는 채소와 식물들이 참 예쁘다. 절로 힐링이 된다. 텃밭을 분양받길 잘했다, 싶다.
주말마다 텃밭으로 가는 그 길이 참 즐겁다.
생각보다 우리를 위로해주는 것들은 주변에 많이 있었다. 하다못해 푸르디푸른 잡초까지도.
주말이 늘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