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아. 전학 보내줄 수 있어?"
중학생이 되었다는 설렘도 잠시, 나는 어느샌가 반에서 왕따가 되어있었다.
그때부터 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외향적이던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전학을 왔던 '원'이라는 친구에게 살갑게 다가갔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다는 걸 알게 된 후로 같이 등하교하며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중학교 등교 첫날, 나는 원이와 같은 반에 배정됐단 걸 알고 무척 기뻤다.
어색한 새 학기 초반에는 원이와 항상 붙어 다녔다.
시간이 좀 지나자, 나는 다른 친구들과 친해져 보고 싶었다.
원이에게 다가갔던 것처럼 나는 다른 친구들과 하교도 하고, 이동수업도 같이 이동하고, 밥도 같이 먹었다.
하루는 수업을 마치고 신발을 갈아신으면서 원이에게 말을 걸었다.
원이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다른 친구들과 자리를 떴다.
나는 원이가 혹시 못 들었겠거니 하고 자리를 옮겼다.
아마 그때 이미 눈치챘는데 애써 모른 척 했던 것 같다.
친구들이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걸.
수련회에 가기 전까지는 어떻게서든 친구들 사이에 껴보려고 했던 것 같다.
수련회에서 내가 우리 반의 왕따가 됐다고 인정하게 된 순간이 있었다.
곤돌라를 타는 스케줄이 있었는데, 누구도 나랑 같이 타려고 하지 않았다.
고소공포증으로 곤돌라 타는 것 자체가 무서웠던 나는 혼자 벌벌 떨면서 이동하는 내내 울었다.
학교에서는 혼자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학업과 멀어졌다.
아무도 나한테 말을 걸어주지 않아서 엎드려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했고, 다른 사람과 같이하는 수행평가도 아무도 나랑 하려고 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엔 수백명이 모여있는 식당에서 혼자 밥 먹기 싫어서 밖에 나가 사먹다 늦기도 했다.
남자애들은 여자애들 분위기 따라서 같이 나를 무시했다.
엎드려있으면 의자를 발로 차면서 비키라고 하고, 없는 사람인 척 치고 지나가기도 했다.
배드민턴 수행평가가 있던 날은 둘씩 출석 순으로 짝을 지어 진행됐다.
나와 짝이었던 친구는 원이와 친해진 친구였다.
내가 못 한다고 해서 그 친구의 점수가 깎이는 것도 아니었고,
공을 받아 치지 못해서 랠리가 끝날 때마다 주워 온 건 나였는데,
나는 나보다 한참이나 작은 친구에게 엿 먹이는 거냐고 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전학만 가면 모든 게 괜찮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엄마에게 나는 전학을 보내달라고 편지를 쓰기로 했다.
당시 아빠가 암으로 투병 중이셔서, 차마 딸이 왕따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는 그랬다.
대신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아. 전학 보내줄 수 있어?"라고 적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뒤 엄마는 식탁 위에 있던 편지를 읽었다.
편지를 다 읽은 뒤,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해달라는 거냐고 짜증 내듯 물었다.
나는 착한 아이처럼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했고, 그러자 엄마는 방으로 들어갔다.
항암치료로 아빠가 한창 예민할 때라 엄마가 그렇게 반응했어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이 기억이 상처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