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팬지 May 04. 2024

기적을 선물한 아빠

​'난 아빠가 죽어도 아무렇지 않을거야.'

뒤늦게라도 내 편에 서준 친구가 있었다.

아마 그 친구가 없었다면 어린 맘에 그 지옥을 못 버텼을 것 같다.

나랑 말한다는 이유로 설렘으로 가득해야 할 중학교 1학년 생활을 망치게 한 것 같아 여전히 미안하다.

항상 내가 미안하고 고맙다고 이야기하면,

"네가 왜 미안해해!"라고 말해주며 오히려 날 다독여줬다.



다른 반에도 외롭지 않은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친구가 있었다.

인간관계가 넓은 친구였기에 나도 자연스레 다른 반에 많은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수업을 들어가는 것보다는 다른 반 친구들과 노는 걸 좋아하기는 했지만,

엎드려만 지내던 내가 일어나 앞을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친구들이라 학업에 열중하지 못한 거에 대한 후회는 없다.

내가 대학을 다니고 있을 때, 이 친구가 나에게 큰 영향을 준 사건이 있는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할 예정이다.





중학교 1학년 생활이 끝나갈 무렵에 나는 해외로 유학을 가게 됐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던 나를 엄마가 두고볼 수 없었나보다.

유학을 간 학교는 어학연수로도 갔던 곳이라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1년에 한 번씩 한국에 올 수 있었고, 가족들과 전화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할 수 있었다.

외국에 있으면서 아빠와 따로 통화한 기억은 없다.

팔자로 걷는다고 길거리에서 아는체 하지도 않던 아빠가,

내가 다가가면 한 발 멀어지던 아빠가,

미웠다.

그래서 항상 마음속으로 날 생각했다.

'난 아빠가 죽어도 아무렇지 않을거야.'라고.


하루는 자습하러 내려가려던 도중에 선생님이 부르셨다.

아버지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고 한국에 가야할 것 같다고 하셨다.

이사장님이 여권을 주면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시니까, 마음 다잡아. 알았지?"

수도 없이 생각해왔던 상황이었는데 충격적이었나 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옆에 계신 선생님께 쓰러졌다.

한국까지 어떻게 왔는지 전혀 기억나질 않는다.


한국에서 만난 아빠의 상태는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매우 좋지 않았다.

눈을 뜨고 나를 볼 수도 없었다.

'죽음'이라는 게 그 순간까지만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비록 기계에 의존해서 숨을 쉬는 아빠였지만, 계속 살아계시겠거니 싶었나 보다.


다음날, 의식이 없던 아빠는 눈을 3번 뜨셨다.

엄마랑 언니는 울면서 아빠 손을 잡고 아빠 눈을 바라봐줬다.

나는 차마 아빠한테 다가갈 수가 없었다.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손을 내미는 아빠를 보고 있는 게 힘들었다.

마지막 눈을 뜬 뒤에 아빠의 심박수는 점점 내려갔고,

작은아빠는 기계가 고장이 난 게 아니냐며 울부짖었다.

"5월 22일 12시 44분 000님 사망하셨습니다."

아빠의 사망선고를 듣자마자 나는 그렇게 또 쓰러졌다.


가족들은 아빠가 나를 기다린 거라고 이야기한다.

돌아가시기 전에 3번 깨어나신 이야기를 들은 지인들은,'기적'을 선물하신 같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1년 전까지만 해도 아빠가 밉기만 했다.

'아빠'라는 단어만 들어도 울었고, 아빠와 함께 방학을 다녀온 친구들 이야기가 들리면 너무 부럽고 질투났다.

한 번은 선생님께 혼이 나던 중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불쌍하다고 생각했는데 불쌍하게 봐줄 수가 없네."

나는 아빠가 없어서 어느샌가 '불쌍한 아이'가 되어있었고,

어리석게 그때도 난 '아빠가 나를 두고 가서 이런 소리를 듣는거야.'라고 생각했다.




이전 01화 내 불행의 시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