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가 변하는 때는 언제일까. 나는 중학생 때 변성기가 한번 오고 나서 계속 큰 변화는 없었던 것 같다. 누군가로부터 들은 것 같은 이야기 중에 사람이 나이가 들어 외모는 늙어도 목소리는 큰 변화가 없다는 말이 생각난다. 오랜만에 연락이 되어 통화한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목소리만 듣고도 누군지 바로 생각났던 적이 있었다. 반면에 오랜만에 마주친 사람은 너무 생김새가 변해서 깜짝 놀랐던 적도 있었다. 아마도 피부의 노화가 성대의 노화보다 훨씬 빠른 것만 같다.
나는 변성기를 거친 후 새롭게 얻은 목소리가 아빠의 목소리와 똑같았다(얼굴은 더 똑같았다). 전화통화로 몇번 실험해 본 결과 가족들 모두를 속일 수 있었다. 나는 종종 아빠와 같은 차를 타고 갈 때면 아빠 대신 전화를 받아 아빠인 척 통화한 적도 많았다. 중학생 이후 거의 십년 넘게 그랬다. 가족들도 다 속아 넘어갔다. 사람만 속인 것은 아니었다. 옛날 휴대전화 모델 중 애니콜 1세대는 말로 전화를 거는 것이 특징이었다. 사용자가 미리 자신의 음성으로 자주 거는 전화번호를 등록해 놓으면, 번호를 누르지 않고도 말로 전화를 걸 수 있었다. 나는 아빠가 저장해놓은 번호들을 나의 목소리로 다 걸 수 있었다.
나와 아빠의 목소리는 기계도 구분하지 못하는 똑같은 목소리였지만 형과 나의 목소리는 아주 조금 달랐다. 결과적으로 우리 삼부자의 목소리는 모두 비슷비슷했다. 아빠는 자영업자였기 때문에 거래처로부터 전화가 많이 왔다. 당시 우리 집과 아빠의 사무실은 한 집에 있어서 나와 형은 많은 전화를 받았다. 그러다 보니 무수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장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형과 나는 각자의 친구들로부터 착각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형의 친구들은 나에게, 내 친구들은 형에게 자기 친구의 이름을 불렀던 것이다. 그래서 형과 나는 대충 각자의 친한 친구들을 소상히 알고 있는 편이었다.
목소리는 참 신비로운 면이 있다. 목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에 대한 여운이 가장 오래 남는다. 청각을 통해 얻은 정보가 뇌리에 잘 박히는 것 같다. 목소리가 잘 변하지 않는 것처럼 그 여운도 변함없이 남는 것 같다. 사람이 죽을 때도 심장이 멈춘 후에 모든 감각들이 소멸될 때, 청각만큼은 마지막까지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것도 어쩌면 잘 변하지 않는 소리가 계속 존재하고 싶은 간절함을 드러내고 싶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그리운 사람을 떠올릴 때, 그 얼굴보다 그 목소리가 계속 맴도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