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사자 Feb 11. 2022

이야기꾼 선생님

새우깡이 먹고 싶다

기억나는 선생님이 한 분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이셨던 선생님인데, 키도 크고 체격도 좋으신 물리 선생님이었다. 중학교 때 물리라는 과목은 없었고, 과학 과목은 물상과 생물로 나뉘었는데 물상을 가르치셨던 그 선생님은 수업 때 자기 전공이 물리라고 알려주셨다. 나는 종종 선생님의 전공은 과학이었지만 학교에서 보여주신 모습 때문에 오히려 체육선생님이 더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선생님은 내 이름을 부르실 때 내 이름에 있는 종성은 모두 빼고 부르셨다. 만약 내 이름이 '김민혁'이라면 그 선생님은 나를 '기미혀이~'라고 부르셨을 것이다. 특유의 경상도 억양과 함께 정감있게 불러주신 그 음성이 참 인상적이었다. 선생님은 점심시간과 체육시간마다 기회가 되는대로 운동장으로 나오셔서 함께 축구를 했는데 그 영향 때문인지 당시 우리 반 아이들은 쉬는시간 10분에도 운동장으로 뛰어나가 축구를 했다.


선생님은 수업시간에도 열정이 대단하셨는데, 종종 재밌는 이야기, 교훈적인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 등을 해주셨다. 재밌는 것은 레파토리가 비슷해서인지 매번 담임을 할 때마다 자기 반 학생들에게 그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알았냐면, 내 위로 두살 많은 형이 있었는데 내가 선생님의 반이 되기 한 해전에 그러니까 내가 1학년이었을 때 선생님은 3학년 반을 담임하셨었다. 그 때 형이 3학년이었기 때문에 형도 이 선생님은 알고 있었고, 형의 친한 친구가 선생님 반이었다. 그래서 형도 몇몇 이야기들을 전해들어서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는 내가 선생님께 들은 '새우깡' 이야기를 형한테 해줬는데, 형은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딘지 들어본 이야기라고 하며 친구한테 들은 거라고 알려줬다. 20년도 훨씬 지난 이 이야기를 내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니 인상적이긴 했던 것 같다.


새우깡 이야기의 내용은 이렇다. 당시에도 새우깡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과자 이름 중 하나였다. 어떤 사람(이 사람은 담임선생님일 것이다)이 집에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출출하기도 해서 버스 정류장 옆의 가게에서 새우깡을 샀다. 마침 타야 하는 버스가 도착했고 버스에 올라 가장 뒷자석에 앉았다. 그날따라 피곤하기도 해서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고 졸다가 정신이 들어 깨보니 자기 옆에 앉은 한 여성이 보였다. 그런데 그 여성이 그가 산 새우깡을 뜯어서 먹고 있는 것이었다.


'아, 저거 내 새우깡인데... '


'거의 다 먹어가네... 내꺼니까 달라고 말해야 하나..'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중에 버스는 그가 내려야 할 정류장에 도착하고 있었다. 드디어 마음의 결단을 내린 그는 버스가 멈추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그는 번개처럼 움직여 그 여성의 손에서 새우깡을 봉지채로 낚아채고 앞만 보고 집까지 달려갔다.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며, 그나마 일부라도 새우깡을 먹을 수 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리고 무사히 집에 도착한 그는 가방 안에서 안 뜯은 새우깡 한 봉지를 더 발견했다.






담임 선생님은 이 이야기가 자기가 직접 겪은 이야기라고 말했는데, 정말 본인 이야기인지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지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런데 축구할 때의 선생님의 모습과 새우깡을 들고 달리는 선생님의 모습이 싱크로율 100%로 일치가 되어 너무 재밌어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가끔 이 이야기를 마치 내 이야기인 것처럼 실감나게 다른 사람에게 해주곤 하는데, 많이들 함께 웃으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정**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Photo by Elle Hughes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수호천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