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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사자 Aug 26. 2022

왜 여기는 횡단보도가 없는거야!

공적 영향력이 가장 큰 길바닥 그림

십여년 전, 인도 타밀나두 주에 여행을 갔을 때 마침 인도 최대 명절 중 하나인 '퐁갈'을 맞은 적이 있었다. 명절은 맞은 사람들의 마음은 감사로 가득 차 있었고 동네 아이들이 거리에 화려한 색의 가루로 예쁜 꽃을 그리는 모습을 보았다. 이런 그림을 '랑골리'라고 하는데 거리에 그려진 예쁜 랑골리를 차마 밟고 지나갈 수 없어서 길의 구석으로 피해서 다녔던 기억이 난다. 명절이 지나면 랑골리는 흔적도 없이 싹 치워지기 때문에 원래길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나는 랑골리를 보면서 당시에 뜬금없이 어릴 적 길에 그림을 그리고 놀았던 생각이 났다. 직사각형 네모 안에 구획을 나누어서 1부터 8까지 숫자를 쓰고, 작은 돌을 사용하여 놀았던 기억. 1부터 8까지 미션을 클리어하면 자기 땅이 하나 생기는 놀이. 우리 동네에선 그 놀이를 '1234(일이삼사)'라고 불렀다. 보통은 흙바닥에 그려서 놀았기 때문에 놀이가 끝난 후 금방 지울 수 있었지만 때로는 골목의 시멘트 길바닥에 분필로 그려서 놀기도 했다. 그러면 그 흔적은 한달 내내 남아있기도 했다. 우리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에는 아예 우레탄 바닥에 페인트로 그려놔서 반영구적으로 그 놀이를 할 수 있게 해놓았다. 


이런 모양으로 그려서 놀았었다. [전래놀이-1234(일이삼사)]


길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목적이 있다. 금방 지워지는 그림이나 일부러 지울 일이 없는 그림까지 왜 그 그림을 그렸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공적인 목적으로 길에 그림을 그려 놓은 경우도 우리는 매우 자주 접한다. 횡단보도는 차들이 다니는 차도를 사람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도로에 그려진 그림인데,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과 길을 건너는 사람 모두가 횡단보도에 대해 사회적으로, 법률적으로 약속된 내용을 잘 알고 있다. 심지어는 한 나라에서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의 도시에서 횡단보도를 활용하고 있다. 멀쩡한 길에 그림을 그려놓고 그 그림과 함께 신호등을 설치하고 전기를 공급해서 일정한 주기로 표시등 색깔을 바꿔서 사람들에게 자유를 빼앗아 버린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약간의 불편함과 자유의 박탈이 모두를 자유롭게 한다.


횡단보도는 길에 그려진 그림 중에서 가장 큰 공적 영향력을 가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종종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건너는 사람들도 많고,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안전하게 이끌어주는 횡단보도의 힘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횡단보도를 보기 힘든 도로를 건넌 적도 있었다. 싱가폴의 어떤 지역이었는데, 보도블럭은 있었지만 횡단보도는 없어서 차들도 빨리 달리고 건너려는 사람들도 많았다. 차량이 많은 가운데서 사람들은 차가 다가오는 동안에 재빠르게 차들을 피해 길을 건넜다. 그 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여기는 왜 횡단보도가 없는거야!'





Photo by Ryoji Iwat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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