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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사자 Dec 20. 2022

너를 도울 수 있어 기뻤어

별거 아니야 으쓱

한 해를 되볼아보게 되는 연말이 되면, 다가오는 한 해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올해도 연말이 되니 지나온 한 해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많은 후회와 아쉬움들이 남았고, 이런 후회를 토대로 내년에는 더욱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 중에서도 마음에 잔잔하게 남은 한 단어는 '도움' 이었다. 왜 이 단어가 계속 생각이 났을까 의아했다. 분명 올해 나는 회사에서 내 일을 하느라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지 못했다. 내가 맡은 일이 함께 협력해서 하는 일이 아니기도 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내가 다른 회사 동료들의 일에 아무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도울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게 더 컸다. 갑자기 떠오른 그 단어 덕분에 나는 내년에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렸을 적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을 때 아주 뿌듯해 했다. 그리고 한 소녀가 생각이 났다. 7살 때 부터인가 3-4년 정도 한 동네에서 살았던 아이였는데, 어머니끼리 친해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어렸을 적 나는 고집도 별로 없고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활동적이고 밝은 그 아이가 좋았다. 여름철 뛰어 노느라 얼굴에는 항상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고, 학교에서는 달리기 대표였는데 달리기를 하면 항상 나보다 빨랐던 것 같았다. 우리는 종종 공놀이를 했는데 가끔 그 아이는 넘치는 힘을 조절하지 못했다. 한번은 내가 집에 있을 때, 그 아이가 우리집에 찾아와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자기 공이 우리 앞집 담장을 넘어갔다고 말하며 나에게 꺼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담을 넘는 것 정도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능숙하게 담을 넘어 그 아이의 공을 찾아주었다. 그 집의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해야 했지만 나는 멋있게 담을 넘었다. 아마 우리 부모님이나 그 아이의 부모님이 내가 담을 넘고 있는 걸 봤다면 우리는 같이 혼났을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모든 상황이 빨리 마무리되었다. 나는 그 아이의 고맙다는 한 마디 말이 그렇게 듣고 싶었나 보다. 나는 별거 아닌 듯이 으쓱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 아이는 그림도 잘 그렸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나, 여름 방학 숙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물감으로 그림 그리는 것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특히 물조절을 너무 못해서 내가 그린 그림은 도화지가 축축해질 정도를 넘어 도화지가 물에 불어 가루가 나올 정도였다. 물감에 물을 너무 많이 타서 여러가지 색이 서로 번져서 처음에 밑그림으로 그린 그림과 완성된 그림은 아주 많은 차이가 나는 한마디로 엉망이 되어버리는 그런 그림을 그렸다. 그날도 방학의 거의 끝자락에 그림 숙제를 하고 있었는데, 그 아이가 놀러와서 대뜸 하는 말이 내게는 희소식이었다.


"내가 도와주러 왔다!!"


우리 부모님이나 형도 날 도와주지 않는데, 그 아이의 도움은 내게 너무 특별하게 받아들여졌다. 30년도 넘은 지금까지 기억이 나는 것 보면 말이다. 그아이의 붓질은 너무 능숙했고, 그 붓끝이 도화지 위를 슥슥 지나칠 때 내 그림이 생명을 얻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그리려고 했던 나무보다 더욱 푸르고 울창하게 그렸고, 내가 그렸다면 나무가 아니었을텐데, 그 아이로 인해 제대로 된 멋진 나무가 그려졌다. 아마도 그 아이는 놀고 싶어서 온 것이었는데, 내가 그림 숙제를 하고 있으니까 빨리 끝내주려고 그랬던 것 같다. 그림을 다 그리고 그 아이는 별거 아니란 듯이 물감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었고 우리는 함께 놀았다.






나는 쉽게 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각자에게 '재능'이라고 이름지어진 능력들인데, 이게 없는 사람들은 없다고 믿는다. 나도 이제는 나의 재능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에게 나의 재능이 도움이 될지도 잘 알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가 다가오는 이 시점에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면 바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나는 그저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별거 아니란 듯이 내 일을 이어서 할 것이다. 어렸을 때 그 아이에게 내가 그랬고, 그 아이도 내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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