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판의 생존력은 정말 지능일까?

by 캡틴판양

MART — 다름이 오해로 바뀌는 순간들

'언제 밥 한번 먹자'와 '토요일 2시에 만나'는 다르고,

'보고 싶다'와 '집 앞이야, 나와'는 다르고,

'사주고 싶다'와 '네 생각나서 샀어'는 다르다.

말은 비슷해 보여도 전달되는 온도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말이 아니라 방식에서도 오해를 만든다.

우리는 늘 타인에게 이해받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와 다른 방식의 사람을 인정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머리로는 말한다.

"다름도 하나의 옳음이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래도 내 방식이 맞아"라고 조용히 고집한다.

작은 조직 안에서는 이 차이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HEART — 인정받고 싶은 마음, 인정하기 어려운 마음

내가 아는 한 사람이 있다.

책임감 있고, 일도 빠르다.

누구보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사람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겨 의견을 나누는 순간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잘못한 건 맞는데요… 사실 그때 상황이 좀…"

말은 인정처럼 들렸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은 말이었다.

틀렸다는 말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리고 곧 알았다.

그건 그 사람만의 모습이 아니라는 걸.

나 역시 틀렸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굳는다.

의견이 부정되는 순간 존재가 흔들리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틀림' 앞에서 아주 취약하게 흔들리는 존재들이다.


ART — 결국 남는 힘

최근 한 강연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AI 기술은 점점 더 똑똑해지고,

우리보다 빠르게 판단하고

우리 대신 선택하려 한다.

처음엔 친절하다.

“밤늦게 치킨은 안 좋아요.”

“운동하는 게 건강에 좋아요.”

그러다 어느 순간

이렇게 말한다.

“그건 너를 위해서 하지 않는 게 좋아.”

폭력적이지 않다.

아주 합리적이고, 부드럽다.

그래서 더 위험할 수도 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다시 그 사람을 떠올렸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스스로를 보지 않으려는 마음이었다.

다름을 인정하고, 잘못을 인정한다는 건 지는 게 아니다.

나를 낮추는 일이 아니라 나를 확장하는 일이다.


결국 살아남는 사람은

가장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타인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수 있는 사람

그러면서, 계속 배우려는 사람일 것이다.


이 판에서의 생존력은

지능일까, 인정일까?

나는 아직 그 답을 현장에서 찾는 중이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