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온도는 몇도입니까?

by 캡틴판양

29살의 나는, 3차까지 "고고고!"를 외치며 얼큰하게 취해 있었다.

마치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든 사람이라도 되는 듯, 회사에 대한 불만을 술잔에 털어 넣었다.

업무에 대한 고민, 직장 상사와 동료에 대한 좋은 점과 나쁜 점까지 이렇다 저렇다 할 이야기는 왜 이리도 많은지.... 그렇게 밤이 깊어질수록 술잔은 끝없이 채워졌다. 결국 3차까지 가야 그나마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난 기특하게(?) 아무리 술에 취해 새벽에 집에 들어가도, 다음날 (때론 당일날) 출근길에 늦은 적이 없었다. 내가 좋아서 마신 술을 핑계 삼아 지각을 한다? 그건 직장인으로서 하루를 시작하는것에 대한 반칙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피곤해도, 내 출근 시간은 변함이 없었다.


그날도 새벽에 일어나 씻고 출근하는데, 어라? 생각보다 컨디션이 좋은데?
속도 괜찮고, 머리도 맑고...

"역시, 나는 술이 세고 정신력도 강해." 혼자 읊조리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출근해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책상에 앉았지만, 거울을 보니 얼굴에 바른 화장은 들떠있고 바르다만 입술이 가관인 몰골이었다.


그러던 찰나, 나의 사수 제임스가 부서원들 다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말했다.

"판 대리, 내가 오늘 강남킴스 가서 시장조사하라고 했지? 거기 지금 오픈했지? 가서 내가 말한 경쟁사 시장조사 좀 하고 와. 나간 김에 점심도 맛있는 거 먹고 들어오고."

어라? 언제 시장조사 시킨다고 했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제임스가 내 자리로 다가와 조용히 차 키를 내밀었다.

"내 차 어디에 주차했는지 알지? 유엔빌리지 위쪽. 어제 과음했구나. 힘들 텐데 차에서 좀 자고 와."

하며 내 손에 코란도 차키를 쥐어주었다.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핑 돌았다.

이건 분명 술기운에 핑도는게 아닌 제임스에 따뜻한 마음에 마음이 일렁인 온기였다., 와.. 소름.. 찐 감동.


일을 잘 알려주는 사수도 좋지만, 직장 생활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아니 돈 들이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는 법을 제임스는 내게 가끔씩 알려주곤 했다.

그리고 나는 이 가르침을 통해, 훗날 고객과 직원의 마음을 얻는 법을 나 스스로 써먹고 있었다.

내 주변에 좋은 걸 받으면 그걸 댓가없이 나누고 함께하고싶은 사람들이 많았으면 정말 좋겠다.


사람마다 온도가 있다. 누군가는 너무 차갑고, 누군가는 너무 뜨겁지만, 내 사수는 늘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한 몇 년 동안, 그는 내 생일에 신세계백화점에서 프랑스 헤어핀을 사 와 자필 카드와 함께 건넨 적이 있다. 어쩌면 그래서였을까?

‘사람과 함께하는 일’에서 힘을 얻는 법을 알게 되었다. 아니, 사람에게 힘을 주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내가 받아서 너무 좋았던 것은, 결국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그대로 전해주고 싶어지는 법.


KakaoTalk_20250507_172131450.jpg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핀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있다


내 마음을 색깔과 크기로 표현한다면?
아마도, 나는 빨간색 네모 속에 하트를 그려 넣었을 것이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딱 그만큼의 온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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