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내가 있잖아.
“아고… 아무리 생각해도 무서워서 수술 못하겠어. 일단 연기 좀 하자.”
출근길, 엄마가 머뭇거리며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인공관절 수술을 또 미루겠다는 이야기다.
물론 수술을 미룬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좋다는 병원을 찾아다니고, MRI를 찍고, 상담을 받고,
조금 괜찮아지면 다시 미루고…
그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엄마에게 가장 큰 벽은 '수술비'가 아니다.
‘이 나이에 수술을 잘 견딜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병원을 오가는 내내 모든 절차가 너무 낯설고 복잡한 현실이다.
요즘 병원은 대부분 키오스크다.
수납도, 예약도, 심지어 검사실 위치도 앱으로 확인해야 한다.
문자 메시지 한 통도 어려운 엄마에겐 단순한 진료 한 번이 반나절을 넘기기 일쑤다.
접수창구에서 묻고 또 물어야 하고 복도 한가운데 서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를 때,
그 옆에 누군가 있어야 한다.
병원에 혼자 오신 어르신들이 가끔 말을 건다.
“아고… 따님이 참 기특하네. 엄마랑 병원도 같이 오고.”
그러면 엄마는 멋쩍게 웃으며 말한다.
“그러게요. 미안하죠. 직장 다니는데 연차를 쓰고 이렇게 같이 왔다는 게…”
그 말을 들으면 나는 그냥 웃는다.
기특해서 온 게 아니다.
그냥… 엄마가 혼자 헤매지 않았으면 해서.
그냥… 내가 없을 때, 엄마가 더 불편할까 봐.
그냥… 이 자리가 내가 있어야 할 자리라고 생각해서 온 거다.
어쩌면 혼자 가서 헤맬 엄마를 상상하는 것 자체가
나에겐 너무 불편하고 불안해서일지도 모른다.
병원이 너무 빠르게 진화한 세상에서 우리 부모님은 뒤처진 채
‘혼자 오면 더 오래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도 연차를 쓴다.
엄마의 손을 잡고 병원 복도의 낯선 풍경 속에서
"괜찮아, 엄마. 내가 같이 있어."
그 말 하나 건네기 위해...
이건 나를 위한 휴가가 아니다. 엄마의 하루 옆에 내가 잠시 머무는 시간이다.
그 하루들이 쌓여 언젠가 엄마가 편히 걸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런 날이 오면
정말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하루가
우리 가족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