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조급해하지 말라고,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그 말을 할 땐 마치 다들 풀코스를 몇 번은 완주해 본 사람들 같다.
나 역시 그랬다.
마라톤은커녕 5km도 뛰어본 적 없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말했다.
경험 없는 말은 설득력이 약하다.
책이나 영상에서 배운 지식보다, 몸으로 부딪히고 느낀 체험이 훨씬 더 강력하다.
경험한 사람만이 진짜 자기 언어를 갖게 된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사람들이 그렇게 자주 인생에 빗대는 마라톤, 그건 도대체 어떤 걸까.
그 시기, 영클럽 단톡방에서 마라톤 얘기가 나왔다.
강동마라톤, 양재마라톤에서 뛰고 있는 언니, 오라버니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너도 목동마라톤 가입해서 한 번 뛰어봐.”
좋은 건 미루지 말자.
나는 바로 ‘목동마라톤(목마)’에 가입했다.
2019년 12월.
사실 상징적으로 2020년 1월부터 시작할까도 생각했지만,
혹독한 추위 속에서 먼저 뛰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판단했다.
새해를 준비하는 다짐이랄까, 아니면 발상의 전환이었을까.
그게 내 마라톤 인생의 첫걸음이었다.
첫 훈련 장소는 목동 인라인트랙.
혼자 가긴 민망해서 조카를 꼬셔서 같이 갔다.
두꺼운 파카를 껴입고, 저녁 7시 겨울밤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1km를 걸어 도착했다.
이미 10명 넘는 회원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간단히 신입회원 소개를 마치자, 팀장이 말했다.
“앞에서 먼저 뛰세요.”
시선도, 팔 치기도, 호흡법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어영부영, 선두에 서서 그냥 뛰기 시작했다.
400m 트랙을 네 바퀴쯤 돌았을 때,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저 이제 더는 못 뛰겠어요…”
뒤로 빠져 걸으며 선두 자리를 넘겼다.
그들은 그제야 진짜 페이스로 달리기 시작했다.
10바퀴, 15바퀴, 20바퀴…
호흡은 흐트러지지 않았고, 몸짓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날 깨달았다.
경력은 결국 실력이라는 걸.
그날 이후 나는 월·수·금 3조 훈련에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주말엔 자율 러닝으로 체력을 다졌다.
딱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나는 드디어 운동장 10바퀴 이상을 뛸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말보다 몸이 먼저였다.
‘나는 못 해’라는 생각이 ‘어? 나도 되네’로 바뀌는 데는 한 달이면 충분했다.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새벽 5시, 깜깜한 목동운동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아직 세상은 잠들어 있고, 나는 조용히 트랙 위에 선다.
몇 개의 라이트 조명 아래에서 몸을 풀고,
두꺼운 패딩을 벗어던진다.
느리게, 그리고 조용히 트랙을 돌기 시작하면 주변 목동 아파트 불빛이 하나둘 켜진다.
깊은 어둠을 뚫고 세상이 서서히 깨어나는 그 여명의 순간.
그 희열이, 그 순간이 나를 그 추운 새벽에도 뛰게 만들었다.
훈련이 끝나면 얼어 있는 손으로 따끈한 유자차를 한 잔 마신다.
그 한 모금의 온기는 ‘오늘도 해냈다’는 조용한 선물이자, 나만의 훈장이었다.
마라톤은 단순히 달리는 운동이 아니었다.
체력보다 마음이, 속도보다 꾸준함이, 폼보다 반복이 중요했다.
그 반복이 변화를 만들었고 그 변화가 나에게 ‘믿음’을 선물했다.
이제야 알겠다.
왜 사람들은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지.
결국 중요한 건 완주가 아니라, 완주를 향해 달려간 나 자신이니까.
그 첫걸음을 내딛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한 달 후의 당신은, 지금보다 훨씬 더 단단할 거예요.”
하프도 뛰어보지 못한 내가 인생을 마라톤이라 말할 수는 없다.
그저 이제야, 아주 조금 고개를 끄덕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