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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olo Sep 10. 2020

타코 와사비와 나의 친구

관계의 단절과 공백, 그리고 친구에 관하여

 생각을 하려고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은 문득 다가온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비가 오는 날의 특유의 어둑함과 이자카야 특유의 어둑함은 역설적으로 테이블 위에 음식과 사람을 주목하게끔 한다. 그래서인지 유달리 나의 휴대폰 사진첩에는 비 오는 날  이자카야에서 남긴 사진들이 많은 걸까?.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구(A)와 오랜 시간 함께 하지 않은 것처럼 멀어졌다. 관계의 단절에 이르기까지 수 없이 많은 아쉬움과 서운함 들이 내가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감정의 방에 꽉 찼기에, 나는 그 방을 비우지는 못한 채 다시는 열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단절을 일방향적으로 고했다. 


 함께한 시간보다 함께 하지 않은 시간이 더 길어지면서, 오랜 시간 동안 그 자리에 남겨졌던 감정들 조차 잊혀진 듯했다.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냥 서로가 안 맞아서 오해를 했으므로 서로가 서로를 멀리했다고 '착각'하게끔 말이다. 10년이라는 시간은 친구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나와 그 친구는 더 이상 그 당시의 '우리'가 아닐 테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 친구에 대한 나의 감정보다는, 그 친구와의 시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문득 말이다.

 

 센치하다는 말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이자카야에서 지나간 과거를 혼자 곱씹는 것이 나에겐 센치한 것 같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술잔이 비워질수록 이러한 단절된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내 감정을 집어삼켰다. 우연일까? 이런 생각을 그 시간을 함께해온 다른 친구(B)에게 전했다. 나 혼자만 옛 시간을 그리워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보다는 그 시간을 '추억'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진 것은 아마도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기 때문일 테다. 다가오는 시간에 쫓겨 살다 보니, 지나간 시간은 쫓겨나듯 멀어진다. 지금이 아니면, 10년 전의 구구절절한 추억과 감정들은 점 하나로  마쳐져 있을 거란 생각에 나는 그 친구와 지난 시간을 마주하기로 했다. 아니 마주하고 싶었다.


 우리는 이태원의  어느 이자카야에서 어색하게 재회했다. "잘 지냈나?"라는 말 조차 입에서 쉽사리 나오지 않았던 것은 마음 한 구석에 걸어 잠가둔 감정이 깨끗이 비워져 있지 않았기 때문일 테다. 그래서인지 '그리웠다'라는 한 마디를 악수로 대신했다. 관계의 단절은 이렇듯 몸으로 먼저  느껴졌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굳이 나를 만나러 온 친구는 무슨 생각이었을까?라는 생각도 문득 하게 됐다. 우리는 말없이 술잔을 비웠고, 함께 했던 시간 속에 있었던 다른 친구(B)는 타코 와사비를 주문하며 그 자리의 불안한 균형을 온몸으로 지탱해주었다, 우리의 친구라는 이유로.


 이런 모습은 과거와 오늘을 이어주며 중간에서 어색함을 누르는 친구의 다른 모습을 각인시켰다. 그녀는 첫 주문(타코 와사비)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같은 메뉴를 서로 다른 장소에서 시키기로 했다. 이는 곧 그녀의 취향이자 전문성의 근원이기도 했다. 내가 이 친구 옆에 여전히 자리할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취향이 아직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일 테다. 덕분에 우리는 단절의 시간을 그리고 함께하지 않은 공백을 아무렇지 않은 듯 보낼 수 있었다. 이태원에서 2번의 이자카야와 두 번째 타코 와사비를 비워갈 즈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센치했을까  아니면 그냥 취했을까?.


 2011년을 마지막으로 교류가 없었던 친구와 다시 만남을 가진다는 것은 아주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용기로 마주한 시간과 지난 시간의 회상은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그 자체로 소중했음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서야만 알 수 있었다. 어느덧 시간이 부쩍 흘렀음을 온몸으로 다시 느낀다. 지난 과거는 나에게만은 생생하지만 마치 어제처럼, 그런 시간의 공백은 그 자체로 그리움과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뻔뻔함의 뒤섞임으로도 보이기도 하는가 보다. 하지만 그 보다 앞서 머리를 채운 것은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게끔 한 벗들 덕분이리라.


짧은 찰나의 순간임에도 어느 한 개인을 뒤흔들기에는 부족하지 않은가 보다.

친구란 짧은 찰나의 순간임에도 어느 한 개인을 뒤흔들기에는 부족하지 않은가 보다.


2번째 타코와사비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물론 그 친구(B)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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