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가져다주는 선물, 인연 (1)

관계 그리고 삶에 대한 고찰

by Paolo

아직 인생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나는 주저 없이 사람을 꼽는다. 삶이란 것은 너무나 복잡다단하지만 그 복잡성을 만들어 내는 것 또한 사람에게 있기에. 시간은 누구에게나 무차별적이지만,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차별적이기도 한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가 너무나 당연해서 또는 지극히 자연스럽게도 우리는 삶에서 사람을 빼놓을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직장 동료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또는 친구와의 통화에서 그리고 가족 간의 주말 식사 자리에서도 언제나 당연하다듯 우리는 사람 이야기를 꺼낸다. 그게 나이건 아니건 관계없이 말이다.


사람은 결국 집합을 이룬다. 해체를 하고 집합을 하고 우리는 그걸 가족이라 부르는지도 모른다. 날 때는 의존적이지만 갈 때는 개인적이고 개별적이다. 우리 가족이었다가 나의 가족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그래서인지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어른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신의 자식들을 그래서 내 새끼라고 불렀던 것 같다. 내 보물 보다, 내 전부 보다 내 새끼는 본능적인 사랑이 담겨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를 넘어서는 것은 결국 나이기에. 내 새끼는 결국 나와 동일시 함과 다르지 않다. 결국 내 새끼는 내가 된다. 그래서 어른들은 그토록 애썼는지도 모른다. 내가 닳고 닳아 없어질지언정, 내 가족 하나만큼은 건사하겠다고 말이다. 삶은 그래서 거울일지도 모른다. 어떤 내가 있고, 어떤 나로 살아가느냐. 인생은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비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결국 삶을 채워가는 건 사람이다. 나만을 위한 삶은 없다. 삶이라는 건 결국 주어진 시간 동안 어떤 사람으로 어떤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느냐를 담고, 닮을 테니. 그래서 불혹에 들었음에도, 자신을 삶의 주인공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피곤하다. 드라마나 작품을 꼭 끝까지 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결과를 알 수 있다. 그런 것처럼, 우리는 사람을 꼭 겪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게 됐는지도 모른다. 피곤한 사람인지 아닌지 말이다. 나는 그래서 이제 덜 피곤하고 싶다. 불혹에 다가가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시간이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는 것이 속이 편할 테다. 삶이 원래 이런 것이라고 희로애락을 담아낼 수밖에 없다고. 계절이 변하듯 사람도 변한다. 똑같은 사람은 없다. 우리 가족도 내 새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걸 자주 깜빡해서인지, '네가 변했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변한 게 없나? 한참을 생각해 볼 문제다.


어릴 적부터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걸 싫어했다. 마냥 착해서라기보다는 내 눈과 귀를 때리고 머리에 스치는 불편한 상상들로 그런 행동들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예민했기에 소심했고, 소심했기에 섬세했다. 부모님을 원망하진 않았지만, 이런 타고난 기질 탓에 나는 사람과의 관계조차도 예민하고 섬세하게 다룰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플지도 모를 말을 남에게 한다는 것이 어찌나 어렵던지, 나는 말을 돌리고 돌리고 돌려서 전달했다. 물론 부작용도 많았다. 이런 나의 배려를 답답하다며 왜 이리 소심하냐며 일갈하는 경우도 다반사였기에. 마치 삶에는 정답과 오답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틀렸나?라는 의문을 항상 가지며 살아왔었다. 10대와 20대가 어떻게 인생을 알텐가. 지금 생각해 보면 멋쩍은 웃음 밖에 나오지 않지만, 나라는 정신과 영혼이 생기기 전의 나는 항상 '우리'에 속해야만 했기에. 학창 시절의 관계는 그래서 무섭기만 하다. 토끼와 거북이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친구는 나인가 우리인가?. 어른들이 친구를 잘 사귀라고 하는 말은 알고 보면 뼈에 사무치게도 중요한 말이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이해할 수 있지만, 그때의 나는 그때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을 테니. 결국 인생은 변한다. 그래서 사람도 변한다. 내가 변한 것처럼. 남이 변한 것처럼.



바다가 항상 같다고 느껴지는가? 쉼없이 부서지고 흩어지고 다시 합쳐지고를 반복할 뿐이다. 우리의 삶처럼 영원한 건 없다. 인생이란 여정은 영원하지 않다는 점에서 평등하고 무차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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