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기) 난 내가 이상하고 별난 놈인줄 알았다-1편

직장을 이직하며 돌아보는 회사와 관계에 대한 고찰

by Paolo

직장을 갖기 전부터 첫 회사가 중요하단 말을 숱하게 들어왔다.

유명하고 이왕이면 큰 기업을 가야 된다고들 그랬다. 반골은 아니지만, 어릴 적부터 한 고집을 해서인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었다.


누구나가 아는 기업보다는 해외영업이란 직무를 하고 싶었다.

미생이 막 히트 했을 때였고 해외라는 곳이 내겐 그리 낯설지 않았기에.

난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해외영업을 해야만 하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알았다.


나의 첫 회사는 그리 유명하지 않은 그룹의 국내 영업관리와 해당 산업군이 아니면 모르는 다소 작은 중견기업의 해외영업 중에서 선택되어야만 했다. 조건으로는 전자를 선택해야 했다. 타향살이를 이어간다는 것의 어려움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냥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기로 선택했다. 해외출장자 리스트가 빼곡히 적혀 있는 화이트보드에 내 이름을 넣고 싶었다. 순수의 무지였는지도 모르겠다.

(해외영업 1팀 이집트, 해외영업 2팀 미국, 해외영업 3팀 인도네시아)


그렇게 나는 나의 길을 선택했다. 물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를 수 없는 초일류 대기업이라면 선택지가 달랐을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달랐을 것이다. (내게 주어진 것에는 심적인 선택의 여지가 있었기에,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선택한 걸 테다) 선택한 이유 중 하나로는 면접관과 면접장의 분위기가 너무나 좋았다.


인턴 정도의 사회경험 밖에 없는 내가 당시, 연달아 봤던 수많은 영업/마케팅 면접 중에서 손꼽히게 따스했기에 더 끌렸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 선택이 틀릴 수가 없었다고 은연중에 믿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건설, 자동차 산업 등의 면접은 딱딱함을 넘어 이렇게 무례할 수 있을까라고 느꼈었다. 경주의 어느 회사의 경우, 대뜸 나의 얼굴을 얘기하며 여자 친구가 있냐고 물었다. 없으면 어떻고, 있으면 어떤가?. (우스운 일이지만 나는 당시에 그 회사에 떨어졌고, 한참 후 그 회사에 합격했다. 일종의 복수였달까.)


무튼 신입사원으로 시작된 나의 커리어는 흥미진진했다. B2G(대 정부/지방자치단체)가 메인이었고 프로젝트의 단위가 크고 길었기 때문에 속된 말로 일이 진행되고 마무리됨에는 하세월이었다. 5~10년 단위의 프로젝트라니, 나는 일 하나를 제대로 끝내면 10년은 늙어있어야 했다. 30대의 나를 20대에는 상상할 수 없었다. 40대의 나를 아직 상상하기 힘든 것처럼. 나의 상상력은 부족했고, 나이브함과 순수함이 여전히 뒤섞여있었기에 나는 그저 웃으며 회사를 다녔다. 모든 게 신기하다는 듯이, 회사일도 즐거울 수 있다듯이.


내가 모셔야 했던 첫 회사의 팀장님은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형에 가까웠다. 내가 입사를 한 해에 팀장으로 부임을 했었다. 그리고 그는 팀장으로서 처음으로 자신의 팀원을 뽑았다. 특별할 것 없는 내가 그에겐 아주 특별하게 기억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아직도 연락을 하고 지낸다. 팀장님 보다는 형님이 지금은 아주 더 익숙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형임에는 분명하다.


그런 팀장을 만난 건 내게 큰 행운이었다. 물론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온실 속 화초였음이 분명하다. 사회경험을 아르바이트 경험으로만 판단할 순 없지 않은가. 그런 재단 속에서의 나는 분명히 온실 속 화초였다. 하지만 스스로는 잡초라고 생각했다. 숱한 바람에도 내 신념을 꺾으며 살아오진 않았기에. 치기 어린 내 모습이 지금은 안쓰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적어도 나의 첫 회사에서, 나는 개성이 넘치면서도 발랄했던 신입사원이었다. 이런 나를 옆에 앉혀서, 업무를 하나하나 알려주며 다른 선배들이 있음에도 자기가 배워온 방식대로 가르쳐준 그 팀장을 나는 귀찮고 부담스러워했었다. 왜?라는 나의 질문에도 반문에도 그는 인상 쓰지 않고 그의 노하우와 경험을 권했다.


당시의 나는 그런 그가 이해되지 않았다. 답을 정해놓고 진행을 할 거면 나의 의견은 왜 물어본 걸까라며 투덜거렸다. 약간의 반항에도 그는 큰소리를 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다른 팀원과 다른 팀과의 언쟁은 잦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상하게도 내 새끼(팀원)와 다른 팀을 유별나게 구분 짓던 그가 정말로 이해되지 않았다. 일에는 책임이 따른다고들 했다. 그는 책임을 지는 일을 혼자서 안고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내 새끼들이 다치는 일이 없도록. 모든 책임과 화살은 자신에게 돌아옴에도 불구하고.


나이 차이가 몇 살 나지 않음에도 어른인 척(적어도 50대 정도의)하며 팀장임을 강조하는 말이 묻어날 때는 그가 싫어지기도 했다. 나이브한 생각에 팀장은 말이 아니라 행동에서 존경을 이끌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런 팀장도 있고 저런 팀장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새끼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지키려 드는 팀장은 없다는 걸 나는 늦게서야 깨달았다. 팀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아니 돌아가야만 한다며 떠난 후에서야 나는 비로소 알게 됐다. 아래와 같이.


바쁜 업무 중에도 애정을 가지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는 선배가 그리 많지 않음을

막내에게 온갖 잡일 다 시킬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는 선배도 그리 많지 않음을

당장 업무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업무를 정말로 배우고 알 수 있게끔 하는 선배도 그리 많지 않음을.


첫 회사를 떠날 때 즈음 그 형은 그렇게 얘기를 했다. 자기도 자기가 배운 대로 가르칠 뿐이라고. 자기가 겪은 아픔을 너는, 내 팀원들은 안 겪길 바란다고 말이다. 나는 시간이 흘러 그런 팀장이 될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도 아득하기만 하다.


2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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