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 숨 쉬는 철(鐵) 이야기

철이 우리의 삶의 숨결이 될 때

by Paolo

을지로에 있는 철강회사를 다닌 적이 있습니다. 묘하게 편안했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풍경을 많이 남길 수 있었습니다. 추억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스틸(철) 에세이를 써보기도 했습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한 탓에, 남이 잘 읽는 글 보다는 제가 남기고 싶은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또한 어느 시점의 추억이고 순간으로 기억 되길 바라며.



1. 문득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당신은 철을 알고 계시나요?”란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과연 뭐라고 답을 할 수 있을까?

누구나가 철 정도는 당연히 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철을 모르진 않는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간결하고 짧은 답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내 머릿속에는 '철'이 없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우리가 쉬는 숨결을 알지만 잘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철은 생각보다 아주 가까이에 있었음을 나는 뒤늦게야 알았다. 일상을 위한 숨결처럼. 철은 그렇게 자리하고 있었다.


2. 4.5g. 우리의 신체가 평균적으로 지니고 있는 철의 양이다. 이 적은 양의 철이 우리의 몸, 곳곳으로 산소분자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의 생성을 좌우한다고 한다. 아! 철, 없이는 우리가 생존조차도 할 수 없나 보다. 그렇지만 이런 중요성에도 철은 고요하기만 하다. 우리의 몸속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내진 않은 채, 묵묵히 제 역할만을 이어가듯이. 왜인지 그 모습에서 오늘도 말없이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보통의 사람들이 눈에 겹친다. 우리의 삶(生)을 위해서 철은 필요했다. 우리의 삶도 보통의 사람들이 만들어가듯이. 철! 이런 철을 다시 생각해 본다.


3. 서울 중구 을지로 29는 나의 밥벌이 장소다. 스스로 밥 한술을 뜨기 위해 아침마다 우리는 여전히 눕고자 하는 몸을 반드시 일으켜내고야 만다. 보통의 사람들이 갖는 일종의 책임이다. 밥 한 끼를 위한 책임은 의식주(衣食住)의 정중앙에 꿈쩍 않고 자리한 탓에 무겁디무겁기만 하다. 그래서 버겁다. 출근 시간의 풍경과 공기가 퇴근 시간과는 정반대로 가라앉아 있는 것도 이런 연유일 테다. 몸과 발걸음도 무거워서인지, 그 누구도 쉬이 입을 열지 않는다. 입조차도 천근만근임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각자의 밥벌이 장소로 향해야만 한다. 변함없는 아침의 이 지독한 익숙함은 여전히 낯설고 불편하다.


몸이 눕고자 하는 곳과 일으켜야 하는 곳, 그 정중앙에는 문이 있다. 우리는 그 문을 여닫음으로써 우리의 시간을 바꾼다. 시간을 바꾸는 건 그 시간을 담는 장소니까 말이다. 철로 만들어진 이 문은 냉정하다. 누운 자리에 깃든 온기를 외부와 단절함에 그 본연의 목적이 있기에 무겁고 단단하다. 문 너머의 뒤섞임에서 오는 피로함을 이미 다 안다는 듯, 홀로서 모든 걸 짊어지고 고요히 서 있다. 이 덕분에 집 안의 온기는 도망칠 새 없고, 고요함과 자리할 수 있다. 밥벌이를 끝내고 집에 들어설 때 마주하는 따스한 포근함에는 철문(鐵)의 이런 수고로움이 매일 같이 녹아있는 것이다. 문이 긋는 장소의 경계는 너무나 분명해서, 우리는 이 무겁고 튼튼한 문을 열고 나선다는 것을 일상의 '시작'이라 생각하는가 보다.


나는 매일 아침 7시 40분에 오는 400번 버스를 기다린다. 눕고자 하는 몸과 타협하여 버스에 몸을 겨우 앉힌 채, 30분간의 여정을 하다 보면 어느새 창밖엔 을지로 29(밥벌이 장소)가 그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인지 매일 아침의 이 30분은 길면서도 짧았고, 짧으면서도 길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노선을 향하는 버스에서 눈에 담기는 건 자연히 버스 안팎의 풍경이었다. 출근 시간은 단어 그 자체로 고단함을 품은 듯하다. 승객들은 아마도 다들 직장으로 향하는가 싶다. 어느새 출근 시간의 버스는 만석이다. 그런데도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참으로 고단한 풍경이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아침의 이 적막은 한결 흐트러짐이 없다. 그래서인지 출근길의 적막은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낯설다. 이런 혼자만의 감상이 싫지는 않다. 일상을 채우는 건 이런 보통의 아침일 테니까 말이다.


나의 보통의 아침은 400번 버스로 시작될 수 있었다. 겉은 몰라도 나는 그 속(內)을 안다. 출근길을 짊어져야만 하는 탓에 무겁다. 무거운 몸으로 승객이 안은 무거움까지 날라야 하는 탓에 그 속은 단단하고 또 단단해야만 한다. 옷을 벗은 버스의 크고 우람한 몸에는 수많은 철이 각각의 자리를 고수해야만 할 테다. 고단한 하루를 열어젖혀주는 견고함은 맡은 역할을 묵묵히 해냄에 있을 테니까. 그런데도 철은 불평불만이 없다. 아주 가끔 끽하는 쇠 긁히는 신음만을 나지막이 내뱉을 뿐이다. 아침이면 나지막이 머리에서 새어 나오던 나의 불평은 그래서인지 금세 자취를 감춘다. 이런 철 앞에서 부끄럽긴 한가 보다. 철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보통의 아침, 그 이면에도 철은 있었다. 아주 조용히 말이다.


4. 나의 생일은 2월 21일로, 더존을지타워(서울 중구 을지로 29)의 생일(1989년 2월 21일)과 같다. 왜인지 모를 편안함을 더 느꼈던 것은, 같은 생일이지만 나보다 형이기 때문이었을까? 형이란 단어가 주는 원초적 안정감이 있다. 왜인지 몸을 기대도 될 것 같은 그 편안한 단단함 말이다. 나의 보통의 아침은 이 건물에 기대어서야 오후, 저녁까지 그렇게 보통의 하루로 이어질 수 있었다. 35년도 넘게 같은 자리에서 말없이 서 있어 주었기에, 이 건물 안에서의 우리의 하루가 또 다른 하루와 닿아 일상이 될 수 있었고, 누군가에게는 추억 그리고 역사가 될 수도 있었을 테다. 우리의 하루를 잡아주느라 얼마나 수고로웠을까. 21층 높이의 이 육중한 건물을 반듯하게 지탱하는 그 수고로움 속에도 수많은 철이 숨어있었다. 흐르는 세월에 겉은 나이가 들어도 속은 들지 않나 보다. 이런 건물들이 을지로1가, 서울 아니 전국을 온통 채우고 있다. 겉과 출생연도는 조금씩 달라도 그 본연의 목적은 다름이 없다. 밥벌이를 위한 하루, 그 일상은 보이지 않는 수고로움 위에 서 있었다.

5. 우리의 일상에서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돌아본다. 나의 삶(生)도 보이지 않는 것들 덕에 이어질 수 있는 것처럼. 삶의 이면에는 언제나 철이 있었다. 철의 잉태를 돌아보면 너무나 까마득하다. 그래서 철이 없는 오늘의 일상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돌이켜보니 숨이 막힐 때야, 나는 숨결을 알아차렸다. 쉼 없는 숨결은 너무나 고요해서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삶과 일상에서 이런 숨결과 철은 너무나 닮아있었다. 부재할 수 없다는 것조차도.

철은 우리 삶의 숨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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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에는 수많은 밥벌이 장소들이 있다. 그 속엔 모두 철이 있다. 이상하리도 철강회사들이 많았던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랄까. 그래서인지 애착이 더 갔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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