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시간, 지나간 사람에게

지나가 버린 시간이 남긴 것들

by Paolo

맑은 하늘과 청량감 있는 공기를 느낄 때면 문득 내게 날아드는 생각들이 있다.

지나간 사람 그리고 지나간 시간들에 대해서 말이다.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해서 내게 잊힌 것은 아니다.

그냥 생각이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을 뿐인 것이니. 그렇기에 잊는다는 것은 지속하지 않음일 테고, 나중에는 결국 단절이 될 테다. 하지만 단절된 시간 속에서 조차도 그 사람이 있었고, 언제나처럼 뜻하지 않은 순간에 불현듯 튀어 오른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맑은 하늘은 그래서 얄밉기도 하다. 마음을 이렇게 헤집어 놓으니 말이다. 아무 말 없이 날아들고, 아무 말 없이 들이킨다. 한때이자 순간이었던, 나의 숨처럼.


단절을 일으킨 시점에 일었던 나의 심적 변화는 당연 하다듯이 스스로 최악의 경우의 수에 다가섰지만, 이미 스스로 내린 결단은 자존심이란 허울 아래에만 자리했다. 마치 최악만은 피할 수 있었다는 듯이 혼자서 자위하며. 무엇이 최악인지도 모른 채로. 정녕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그렇게 시간과 작별했다.

뜻하지 않게 떠오르는 이런 지난 순간들을 굳이 외면할 필요는 없다. 언젠가는 떠올리려고 온갖 노력을 해도 떠오르지 않는 시간조차 오고 말 테니까. 그렇기에 한참의 시간이 지나더라도, 지난 것들에게 객관적인 태도와 시각을 견지할 수는 없다. 지난 시간은 이미 주관적인 해석과 해설로 가득 찬 시간이기에. 시간이 바꾸는 건 오롯이 나뿐이다. 이런 시간조차 마주함을 알 수 없었던 그저 어리석은 나. 만약 이럴 줄 알았다면, 지난 시간은 달라졌을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행운일까, 더 큰 불행일까?. 나는 아직 그 답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시간들이 더욱 소중하고 애절하게 느껴져만 간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말이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다 잊혀질 거란 어른들의 말은 젊었던 나를 위로하기 위해 그냥 하는 말이었을까?.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도, 여전히 선명하기만 하다. 손 뻗어도 닿지 않을 만큼 이제 멀어졌는데도, 그 기억은 왜 더욱 애절해져만 가는가. 그리움은 그저 덤인가 싶다.


그때를 그렇게 돌아본다.

나는 그저 그에게 있어, 남이란 한 글자에 점 하나만을 빼고 싶었다. 점 하나를 뺌으로써, 그대에게 님이 되고 싶었으니까. 단순하디 단순한 마음에, 그저 그의 님이 되고자 했던 순수한 그 마음에. 쿵쾅거림이 다 비치는 그런 마음이었기에 어떻게 당장이 아닌 그다음을 기다릴 수 있었을까 싶다.

근데 지나고 보니, 님이란 글자에 점 하나 붙이는 건 더 간단하더라. 점 하나를 스스로 붙여 남으로 만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누군가의 님이 남이 된다. 내게도 그랬다. 허무해서였는지 자존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한참을 아주 한참을 돌아보지 않았다. 잊는다는 것은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뒤돌아본 시간에는 남들만이 있었으니까. 남이기에 나는 자주 돌아보지 않았나 보다. 님이 아니라 남이기에.


하지만 지금 내게 오롯이 남은 건 지난 시간이 있었다는 것. 나는 여전히 그 시간을 기억한다는 것.

결국, 나 이외에 다른 모든 것은 그대로였나 보다. 지금 이 순간에 문득 떠오른 하나. 그런 시간이 있었음에 감사하는 것.

이러한 마주침과 재회 또한 그랬던 시간 덕분이지 않나. 맑은 하늘과 청량감 있는 공기 덕분일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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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kel 2, 41472 Neuss, Museum Insel Hombroich, Germany


같이 왔던 이 길을 나 혼자 걷는 기분은 묘하다.

혼자 걷던 길을 같이 걷는 것과는 다르게. 그 길을 혼자 걷고 또 걷는 기분은 굉장히 묘하다. 그래서인지 같이 걸었던 이 길은 내게 여전히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님이 되고자 함께 걸으며 느꼈던 이 길을 덮었던 맑음과 청량감이, 남이 되어서도 이리 나를 덮어대는 걸 보면 말이다.


언젠가 함께 지난 시간을 미소로 곱씹을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지난 시간들을 이렇게 잠깐 잡아둔 채, 한 올의 소망을 건네며 다시 떠나보낸다.

지나간 시간, 아니 지나간 사람을 위하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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