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춘 속에 자리한 도전에 관하여
2016년에 우연히 첫 공모전에 지원을 해보았고 운이 과분하여 좋은 결과가 있었습니다.
이는 저의 여전히 조악한 글쓰기의 시작이었고 즐거움이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된 분과의 긴 대화 속에서 저의 2016년과 도전의 흔적이 자리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2020년에는 다소 안 맞을지 모르겠지만 나름의 기억과 가치로 자리하는 듯하여 올려보게 되네요.
많은 청년들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치열한 경쟁의 시대에 외로이 서있다. 그 어느 곳보다 청춘의 향기가 짙어야 할 대학에서도 캠퍼스의 낭만을 만끽하는 청년들보다는 외로이 혼자 끼니를 때우고, 도서관으로 향하며 그렇게 외롭게 하루를 마감하는 이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대학을 다닐 시간보다 떠날 시간이 더 가까워지는 시점부터, 우리는 자연스럽게 도전을 준비하게 된다. 도전은 과연 무엇일까? 국어사전의 정의에 의하면, 도전이란 정면으로 맞서 싸움을 걺이라 명시돼 있다 어원으로 보듯이 도전이란 본디 어려움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취업을 앞둔 많은 이들은 더욱 외롭다. 같은 목표를 향한 다수의 도전은 자연히 경쟁이 되며 성공과 실패로 승자와 패자를 구분 짓기도 한다. 도전이 어디 취업뿐만 이었던가? 우리의 일상에서도 보듯이 우리의 삶 자체가 도전을 필요로 하는 듯 보인다. 여기서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니체가 도전에 관했던 명구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나를 믿어라, 인생에서 최대의 성과와 기쁨을 수확하는 비결은 위험한 삶을 사는 데 있다.” 도전의 실패가 누군가에게는 위험한 삶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인생에 있어 최대의 기쁨이 되기도 한다. 도전의 역설이다. 진부하지만 우리의 대입 시절로 돌아 가보자. 누군가는 원하는 대학으로 단번에 진학을 하지만, 누군가는 그렇지 못한다. 대입이 인생 최대의 도전일 때에, 그렇지 못했다 했었은들, 우리의 삶이 도전의 실패로 마침표를 찍었던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우리는 A라는 길을 가지 못했을 뿐, 대신 B라는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생각지 못했던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누군가는 A라는 길을 가고 싶어 ‘재’ 도전을 한다. 이 모두 도전이 아니던가, A를 걷건, B를 걷게 되건 시간이 지난 후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가 실패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우리는 언제든 또 ‘실패’를 한다는 점과 우리는 이를 잊고 지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자리를 빌려서 나에게, 나와 같은 대한민국의 학생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오롯이 나를 위한 삶을 살아달라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걷게 해달라고 말이다.
우리는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배웠지만, 남들과 비슷한 길만을 걸어야 된다고 강요받는다. 남들이 선망하는 기업을 가야 한다고, 넌 공무원을 해야만 한다고 말이다. 정말 우리가 다양하다면, 다양하지 않은 길을 자의가 아닌 타의로 걷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여기에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답이 존재하지 않아야만 우리는 다양해질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창업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글쓰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푸드 트럭이 ‘스스로’를 위한 길일지는 아무도 모를 터다. 이들이 틀렸다고 인생이라는 도전에서 실패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다만 그들 스스로만이 느낄 뿐이다.
이렇듯 타인의 시선을 벗어두고 정답처럼 보이는 길을 마다하고, 오롯이 자신의 길을 가고자 함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외로이 걸어가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는 누구의 도전도 아닌 나의 도전이 될 것이다. 우리는 간간히 이런 소식을 접한다. 모두가 선망하는 외교관이라는 직(職)을 던지고 우동요리사 라는 업(業)을 선택한 한 가장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인생이라는 고된 여정을 ‘나의 인생’이라는 이름으로 한발 한발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미래는 불안하기만 하다. 그래도 괜찮다, 지금 이 시간을 고민하는 누구나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이렇게 말했다. "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 드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안정적인 직장을 위한 시험이나 스타트업만이 도전으로 인식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알을 깨는 것’이 아닐까?
김영하 작가의 Ted 강연(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나의 길이라면 결국엔 재밌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