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그리 이야기를 했거늘
20개월 아이가 아빠 가라! 를 외치며 아빠를 거부하는 과정 중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아빠의 노력을 연재하는 매거진입니다.
나는 아내의 말을 빌리자면 지독 시리도 아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가 아빠를 거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는 일이다.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아빠와 보내는 시간보다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다. (물론 주 양육자가 반대인 경우는 제외하고 말입니다.)
아내가 이런 현상이 나오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항상 강조하던 것이 하나 있다.
이 놀이는 아빠랑만 할 수 있어
아이에게 이런 마인드를 심겨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 놀이는 너무 재미있는데, 아빠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놀이야 라는 마인드가 생겨야 아빠를 찾을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아내 스스로의 생각은 아니고, 전문가 누군가가 한 이야기라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었어야 했다.
아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아이와 놀아주려 하면 아이는 얼마 가지 않아 놀이를 지루해한다.
그도 그럴 것이 리액션 부자인 우리 아내와 하던 놀이를 나와함께 하고 있는데, 리액션은 없지 표현은 안 하지 재미도 감동도 없는 그런 놀이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아내가 놀아줄 때의 아이의 모습은 정말로 혼이 쏙 빠질 정도로 깔깔 웃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무뚝뚝한 갱상도 아부지가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리 없다.
내가 나름의 창의력을 발휘하여 아이와 놀아주고 아이가 그 놀이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면 여지없이 아내가 다가와서 아이에게 말한다.
재미있지? 이 놀이는 아빠랑 하는 놀이야!
그렇게 한 두 가지 놀이가 생겼지만, 내가 없는 동안 아이가 아내에게 그 놀이를 요구한다고 한다.
그럼 아내가 놀아주는 것이 대체적으로 더 재미있으니, 다시 나에게 흥미를 잃기 마련이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래도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아이와 놀아주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기에, 아이와의 관계가 점점 개선되고 있다.
드디어 내가 아내의 말을 그대로 듣고 아내의 뜻대로 아빠랑만 할 수 있는 놀이를 개발하게 된 것이다.
퇴근 후 저녁에 아내가 씻으러 들어간 사이에 아이와 위의 책을 읽었다.
바람에 날려간 버트가 모험을 하는 내용인데, 책 표지에서와 같이 버트 (딱정벌레)와 무당벌레가 날아가는 모습이 제법 우스꽝 스럽다.
아이 앞에서 버트와 무당벌레 흉내를 냈더니 너무 좋아하는 것 아닌가.
본인도 따라 하며 깔깔거렸다.
이것인가? 생각이 나서 아이의 얼굴에 바람을 후후 불며 말했다.
우리 딸 버트처럼 날아가요!
그리고는 아이를 들고 버트와 무당벌레처럼 이리저리 바람에 날리는 동작을 해 주었다.
아이의 웃음이 끊이질 않았고 “또! 또!”를 외쳤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10분가량을 아이를 들고 돌리고 내려놓고를 반복했다.
씻고 나온 아내도 흐뭇해하며 바라보았고 다시 아이에게 말해 주었다.
이 놀이는 아빠 아니면 정말 못 해주겠다!
내가 아내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리액션이 좋은 것도 아니고 표현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함께 시간을 오래 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단 하나, 아내보다 “힘”이 조금 더 쌔다.
몸으로 놀아주는 것이다 보니 자연스레 스킨십을 할 수 있게 되고 아이와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출근한 사이에 아내가 몇 번 해줘 봤지만 별로 만족하지 못해 했다고 하니 더욱 기뻤다.
문제는 이제 이 놀이도 지겨워한다는 것이지만 한동안은 아이와 함께 정말 제대로 놀 수 있었다.
이런 놀이 또 개발해야지, 별 수 있겠는가?
좋은 아빠 되기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