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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부지 Feb 14. 2023

아빠 어디서 자?

아빠 우리 딸이랑 같이 잘게~


아빠 어디서 자?


23개월 된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 치고는 너무 또박또박했다. 말투에서는 냉기가 느껴졌으며, 눈빛조차 매우 날카롭게 나를 쏘아보며 한 말이다.


‘아빠 오늘은 우리 딸이랑 같이 잘 꺼야’라고 대답을 하며 끌어안아보았지만, 나를 밀어내며 다시 물어본다.


아빠 어디서 자?




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 이유가 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삶, 가족이 내 인생의 최고의 가치라는 생각으로 살아가고는 있지만, 자유시간이 필요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엄마도 아빠도 가끔은 자유시간이 필요하다. 아이와 떨어져, 가족과 떨어져서 혼자서 있는 그 진정한 의미의 ’ 자유 시간‘ 말이다.


이거 말고요….


처갓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장인어른과 함께 소주를 한잔 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집을 떠나서 다른 곳에서는 잘 자려고 하지 않는 아이 덕분에 항상 아내가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와서 잠을 청하곤 한다.


그날은 소주를 한잔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늦어졌고, 자연스레 아이가 잠을 청할 시간이 다가왔다. 장모님께서 사위 고생하는데 혼자서 집에 가서 자라고 하자며 아내를 설득하고 있었다.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으나 내색은 하지 못했다. 그날은 아내가 웬일로 흔쾌히 허락을 해 주었다.


아이에게 ‘아빠 내일 올게’ 인사를 하고, 처갓집을 떠나 집으로 향했다. 얼마 만에 얻는 자유시간인가. 집에 가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며 걸어가는 발걸음은 매우 가벼웠다.


집에 도착해서 자유를 만끽하며 맥주를 한 캔 더 마셨다. 막상 자유시간을 얻게 되니 크게 할 일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슬픈 현실로 다가왔지만. 어떻게 보면 내 삶이 이미 자연스레 가족 중심의 삶이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보통 이런 자유시간을 얻게 되면 아침 일찍 처갓집에 가서 아이와 점심을 먹고 집으로 복귀하기에, 일찍 잠을 청했다. 추웠던 날씨에 매일 밤 함께 모여 자다가 혼자서 잠을 청하니 잠이 잘 오지 않는 쓸쓸함과 더불어.


아침이 되었는데 아내가 날 찾지 않는다. 연락을 했더니 쉬는 김에 푹 쉬고 저녁 먹을 시간에 맞춰서 오라는 것이 아닌가?


오래간만에 넷플릭스를 켰다. 별거 안 보는데도 너무 즐거웠다. 밤잠을 설친 탓에 꿀맛 같은 낮잠도 자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저녁 시간이 되어 처갓집에 다시 가서 반가워 아이를 껴안으려 했더니 나를 밀어내며 한 말이다.


아빠 어디서 자?


수십 번도 넘게 ‘오늘은 아빠 우리 딸이랑 잘 꺼야’라는 반복을 하고서야 아이의 눈매가 다시 부드러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젠장, 이제는 자유시간도 정말 쉽지 않구나.


너 정말 많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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