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와 나눈 9년의 계절들
2016년, 드디어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었다. 비록 은행 빚으로 산 아파트였지만, 집 없는 설움에서 벗어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저 감사했다. 우리 가족 모두는 이사하기 두 달 전부터 어깨춤을 추며 신이 났다. 그중에서도 잇몸이 만개하도록 좋아하던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물고기 집사(나)와 물고기 친구들이었다. 그 이유는 이사 기념으로 새 어항을 구입해도 좋다는 와이프님의 최종 승인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이보다 더 근사하고 흥분되는 일이 있을까?
나는 풍수지리 신봉자였다. 집 안에 어항을 두면 복이 들어오고 재물운이 상승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어릴 적, 중국집이나 시골 농협에 커다란 어항 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던 황금빛 잉어를 잊지 못했고, 결국 성인이 된 지금 나는 '황금안시'를 키우게 되었다. 그놈이 바로 안시 아빠였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어항(물)의 기운은 '재물과 복'을 가져오며, 어항의 위치와 관리 상태에 따라 ‘길흉화복’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어항의 위치 선정과 관리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직감적으로 판단했다. 다행히도 나는 엔지니어였다. 무언가를 만들고 시도하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이사할 집의 도면을 구해 치수와 구조를 먼저 파악했다. 주말에는 가족들과 함께 이사 갈 집을 방문해 실측도 했다.
어항의 위치를 정하기 위해 처음에는 연필로 대략적인 구상을 했지만, 집 전체의 정확한 구조를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가족들에게 멋진 어항을 자랑하고 싶어 근사한 자료가 필요했다. 그래서 컴퓨터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인 ‘스케치업(Sketchup)’을 활용하기로 하고 방법을 공부했다. 퇴근 후 1시간씩 유튜브 영상을 보며 그리는 법을 익혔다.
처음에는 선 하나 긋는 것도 어려웠지만, 매일 연습했다. 작은 의자부터 30cm 큐브 어항, 소파, 책상, 벽체 등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그렸다. 궁하면 통한다고, 매일 그리다 보니 실력은 점점 나아졌다. 한 달 후, 드디어 거실 도면을 완성했다. 이어서 주방, 침실, 아이들 방, 화장실도 정확히 그렸다. 이렇게 집 구조를 상세히, 치수까지 담아낸 후 가장 최적의 어항 명당자리를 찾기 시작했다.이제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끝났다. 평면으로 그린 도면을 3D로 구현해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전지적 하늘 시점! 우리 집이 탄생한 것이다.
나는 풍수지리학적으로 가장 좋은 예비 어항 명당자리 두 곳을 선정했다. 선정 조건은 매우 신중하게 설정했다. 먼저, 재물과 복이 막힘없이 흘러들 수 있도록 방위는 동남쪽을 선택했다. 또한, 아파트 현관을 열자마자 어항이 잘 보이는 곳으로 정했다.
1번 위치는 거실 창가 쪽이다. 이 위치의 가장 큰 장점은 동남향으로 개방된 창 옆 소파에 앉아 '물멍' 하기 딱 좋은 자리라는 점이다. 심적으로도 가장 안정된 공간이다. 하지만 해가 직접 들어와 이끼가 많이 생길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2번 위치는 파티션 형태로, 3면에서 어항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뷰 맛집이다. 수족관 카페 같은 근사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위치이기도 했다. 사실 나는 두 곳 모두 마음에 들었다. 가능하다면 두 곳 모두에 어항을 설치하고 싶었다.
1번 위치에는 한국의 멋이 담긴 담수어항을, 2번 위치에는 푸른 바다가 일렁이는 해수어항을 놓아 분위기 있는 카페처럼 꾸미고 싶었다. 이게 바로 꿈의 거실 아니겠는가! 하지만 아쉽게도, 와이프님께서는 단 하나의 어항만 승인해 주셨다.
오, 신이시여! 두 개 어항은 정녕 허락되지 않는 것입니까? 어쩔 수 없었다. 가정의 평화가 우선이었다. 까딱 잘못했다간, 하나조차 설치하지 못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단 담수어항 하나를 근사하게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가족들이 모두 만족하면, 슬그머니 해수어항을 추가로 설치하는 전략을 추진해 보려 마음먹었다. 역시 나는 완벽한 남자였다.
나는 수초 전문 네이버 카페 ‘수초문화원’ 고수님들께 고견을 여쭈었다. 역시 전문가들은 달랐다. 장기적인 관점, 심미적인 관점, 관리의 효율성 등 다양한 경험에 기반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나는 이 다양한 의견을 종합했고, 최종적으로 가족회의를 통해 1번, 창가 쪽으로 결정했다.
아래는 2016년 동남쪽 창가에 설치된 4자 수초어항의 모습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이 위치를 선택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탁월한 선택 중 하나였다.
그리고 9년이 흘렀다. 2016년에 설치된 어항은 여전히 그 자리에 고목처럼 버티고 있다. 수많은 계절을 함께한 어항과 물고기 친구들은 차가운 바람과 뜨거운 태양을 온몸으로 견디며 우리 가족을 지켜주고, 보듬어 주었다.
앞으로도 우리 가족을 잘 보살펴 주세요. 그리고 이 소중한 이야기가 책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꼭 도와주세요. 그날이 온다면, 나는 믿게 될 것이다. 사랑이 깃든 어항에는 진짜 기적이 자란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