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즈플 Dec 30. 2023

내년에도 혼자 멈춰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대, 다들 한창 밖으로 걸어 나가는데 말이다.




여러분은 ‘마라 엽떡’을 아시나요?

요즘 유행하는 음식이라고 하더군요.

친구의 강력한 추천으로 망년회 겸 친구의 생일파티 겸 집들이의 점심 메뉴는 매콤 달달한 떡볶이가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저염식을 하라고 했지만, 이렇게 한 번쯤은 자극적인 일탈도 괜찮지 않을까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참 그대로인 것 같기도, 많이 변한 것 같기도 합니다.

시험기간마다 후드를 푹 눌러쓰고 쫄래쫄래 동아리실에 모이던 친구들은 어느새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  후임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더군요.


이제 30줄에 들어서는 시기.

20대 때는 우리 모두 내가 어떻게 살아 나가야 하나, 이 길이 내 길이 맞기는 한 건가 방황하고 자기 자리를 잡느라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왜 이리 실수를 많이 하는 건지. 일은 왜 이리 다양하고 복잡하게 시키며, 사내 분위기와 눈치란 무엇인지 몰라서 매일이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위태로운 느낌이었더라죠.

30대는 그나마 좀 더 여유로운 느낌입니다.


내 자리를 찾아 엉덩이를 붙이고 이직을 해보기도 하고, 좀 더 전문성을 높여보겠다고 수련을 하기도 하고요, 아니면 아예 삶의 궤적을 확 뒤바꾸어 새로 시작해보기도 한 나이.


그럼에도 싱그럽고 에너지 넘치는 나이. 밖으로 발산할 것이 넘치는 나이대가 30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밖으로 나아가며 자신의 전공과 진로를 찾아가는 친구들의 모습이 제 눈에는 멋지게만 느껴집니다.



한 살 어린 후배는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합니다.

제가 병을 얻기 전 일하던 곳이 정신병원이다 보니 대상자가 부분적으로 겹치고, 그래서인지 공감 가는 부분이 많더군요.


개인적으로 정신건강 전문요원의 길을 선택한 후 병원들에서만 일해온 저는 지역사회에서 일해보고픈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역사회의 생동감 넘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겪는 다양한 이야기들 속에는 답답함도, 어려움도 있지만 후배는 학부 때부터 똑 부러지기로 유명한 애였던지라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는 친구들과 달리 저는 제자리에 멈춰 서 있으니까요.



루푸스 진단을 받았을 적, 주치의는 경고했더라지요.


“9-6에 야근이요? 분명 병 심해집니다.”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건강이 먼저라는 의사 선생님.

그러나 대부분의 소시민은 건강을 지키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려면 그 9-6에 야근이 잔뜩 버무려진 회사에 출근을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살고 있잖아요.


그래서 의사 선생님의 말을 무시했다가 결국 심장과 콩팥에 염증이 올라왔지만요.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돈 많은 백수가 되고 싶다고 말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매슬로우의 욕구이론에 따르면 먹고사니즘이 해결되고 나면 사랑과 소속의 욕구, 존중의 욕구를 원하게 됩니다.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원하고, 소속감을 원하게 됩니다.

가족 내에서 만의 소속감에서 나아가 사회생활을 하며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이 받아들여지긴 바라고,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타인이 자신을 원한다는 생각을 받기를 원합니다.


저는 욕구를 채우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직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리랜서이든, 물리적인 직장이든 내가 일을 하고 커리어를 쌓아 나가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타인에게 인정을 받고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 나갈 수 있습니다. 물론 눈에 보이는 가치 증명의 방법 중 하나는 돈이 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조금은 답답했습니다. 왠지 재취업을 하고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헛바람도 들어서, 취업사이트를 하릴없이 들락거리기도 했습니다. 회사에서 힘들었던 일을 토로하는 친구들이 멋져 보였습니다.


퇴사한 지 고작 반년도 안 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그 기간은 점점 멀어지겠죠.

괜찮다고 생각하다가도, 아주 가끔 서글프게 느껴지는 날이 있습니다. 어제가 그런 날이었던 듯합니다.


이사 오면서도 버리지 못한 전공책들을 괜히 꺼내보았습니다.

손 때가 잔뜩 묻은 두꺼운 책이 다시 필요할 일이 있을까요?


2023년을 마무리 할 때입니다. 2024년을 준비할 때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저는 아직 루푸스를 모두 받아들이지 못한 듯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루푸스 환자는 자외선을 얼만큼 피해야 하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